[스포츠서울닷컴 | 김지혜·나지연기자] 좋은 영화 뒤에는 명감독이 있다. 인기 가수 뒤에는 뛰어난 작곡가가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개그맨은? 개그는 혼자하는 것이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웃긴 코미디를 더 웃기게 만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일명 마법의 손이라 불리는 분장사들이 그 주인공이다.

KBS-2TV '개그콘서트'의 인기코너 '분장실의 강선생님'의 성공에는 개그우먼 4인방 강유미, 안영미, 정경미, 김경아가 있다. 그러나 이 코너의 성공에 박수를 받아야 할 또 다른 사람이 있다. 분장사 배미화씨다. 7년째 '개콘' 개그맨들의 분장을 담당하고 있는 배미화씨는 현실의 속 강선생님이다.

의뢰서만 봐도 5분안에 분장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걸출한 감각과 빠른 손을 자랑한다. '개콘'에 '강선생님'이 있다면 분장실에는 '배선생님'이 있는 셈이다. 개콘 분장실의 터줏대감 배선생님의 분장실 이야기와 분장 철학을 들어봤다.

◆ '분장 개그' 뒤에는 이 사람이 있다

요즘 장안의 화제라구요? 부끄럽네요. 따뜻한 밥 먹여서 학교에 보내놓은 자식이 중간고사에서 1등하고 온 것과 같은 느낌이랄까요. 사실 모든 공은 무대에서 열심히 웃겨준 4명의 개그우먼 덕이죠. 전 그저 분장만 해줬을 뿐인걸요.

전 한국 분장 소속의 분장사이고 올해로 경력 7년째예요. 분장 경력의 대부분은 '개콘'에서 쌓았죠. '갈갈이'부터 '마빡이', '출산드라'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코너는 다 저희 분장팀의 손을 거쳤죠. 개그에도 흐름이라는게 있잖아요. 사실 분장 개그의 시대는 갔다고 많이들 얘기했었는데 역시 유행은 돌고 도나 봐요.

정경미씨가 '분장실의 강선생님'(이하 강선생님) 아이디어를 가지고 강유미, 안영미, 김경아 씨와 코너를 만들때 옆에서 지켜보면서 "만약 저 코너가 하게 된다면 진짜 재밌겠다" 그 생각을 했었어요. 동시에 "아, 이제부터 분장실이 더 바빠지겠구나"하는 생각도 들었죠.

◆ 오랜만에 만나는 블럭버스터급 분장

골룸은 개콘 전담 분장사인 저로서도 오랜만에 만나는 블록버스터급 작업이예요. 그러나 시작 전 안영미씨에게나 저에게나 많은 기대와 우려를 갖게한 캐릭터이기도 했어요. 아시다시피 몇년전에 조혜련씨가 하셔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캐릭터였기 때문에 잘못하면 어설픈 아류에 머물 위험도 컸기 때문이었죠.

안영미표 골룸은 조혜련씨와 같은 듯 다른 느낌을 주기 위해 신경썼어요. 우선 골룸이라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특징들은 다 살렸어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통일된 살색 피부, 대머리, 깊은 주름 등을 통해 누가 봐도 "골룸이다"라고 할 수 있게요.

안영미씨를 분장할 때 중점을 두는 것은 포인트예요. 매주마다 분장에 하나씩 포인트를 줘요. 코너 컨셉트도 매주 분장실에서 일어나는 일이잖아요. 다른 개그우먼들은 매주 새로운 캐릭터를 선보이는 반면 골룸은 늘 똑같기 때문에 코를 새빨갛게 칠한다거나 손에 은박지를 붙여 보는 사람들의 웃음을 자극합니다.

◆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있나요?

'강선생님'이 대박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물어요. 주역 4인방을 분장할 때 유독 많은 공을 들이지 않냐구요. 그렇지 않아요.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듯이 저희 분장사들에게도 개콘 개그맨들의 분장은 하나같이 소중하고 의미가 있어요.

분장이랄게 없는 이수근, 김준호, 신고은 씨와 작업할때나 상대적으로 손이 많이 가는 강유미, 정경미, 안영미 씨와 작업할때나 주어진 시간안에 최대의 에너지를 쏟으려고 노력해요. 심지어 민감한 피부 때문에 분장은 커녕 스킨, 로션도 못 바르는 박지선씨도 자칫 화면에 얼굴이 번들거려 보일까 피지와 기름 제거에 신경을 쓴답니다.

캐릭터마다 손 가는데가 다 조금씩 달라요. '소비자 고발', '독한 놈들', '나쁜 남자' 팀은 내추럴 메이크업을 추구하고 '분장실의 강선생님', '할매가 뿔났다', '꽃보다 남자' 팀은 강렬한 포인트 메이크업을 해요.

◆ 피부 어떡하냐고요? 걱정 마세요

개콘 녹화 한회분이 끝나면 얼마나 많은 화장품이 소요되냐고요? 글쎄요. 그건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30여명의 개그맨의 얼굴을 분장하고 나면 약 1kg 정도의 화장품은 쓰지 않을까요. 시청자분들도 TV를 봐서 알겠지만 워낙 특수 분장이 많기 때문에 특수 화장품을 많이 써요.

특히 얼굴 전면에 색깔을 주는 분장의 경우 연극이나 뮤지컬에서 쓰는 도란이라는 유성물감을 쓰기도 해요. 또 대머리 분장에 쓰이는 볼드캡을 씌울때는 분장용 본드를 얼굴에 붙이기도 해요. 때문에 많은 분들이 "피부 다 버리겠다"는 우려를 하세요.

피부는 저희 분장사들이 가장 신경 쓰는 것 중 하나예요. 아무리 멋진 분장이라 해도 개그맨들의 피부를 버리면서까지 할수는 없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화장품은 최고급을 사용해요. 특히 신경쓰는 것은 기초 화장이예요. 기초를 탄탄하게 하지 않으면 피부 트러블이 올 수 있거든요.

◆ ON AIR→녹화가 끝나고 난 뒤

분장을 마쳤다고 일이 끝난 건 아니에요. 무대에 '온에어' 불이 켜지면 분장사들도 긴장하게 돼요. 우리의 손이 닿은 개그맨들의 진가가 이제부터 발휘되니까요. 분장사들에게 모니터는 필수예요. 분장실에는 TV가 설치되있어 무대위에서 녹화하는 개그맨들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어요.

매주 똑같은 분장을 하는 개그맨들은 '뭔가 실수한게 없나', '화장이 너무 진하게 된 것은 아닌가'하고 체크를 해요. 또 새 캐릭터로 변신시킨 개그맨들의 무대에서는 '조명을 받았을때 캐릭터가 잘 살았나', '너무 과하거나 덜하지 않았나'와 같은 것을 체크해요.

또 안영미씨, 박지선씨, 박희순 등과 같이 여러코너를 하는 개그맨들의 경우 녹화 중에서 분장을 새롭게 해야하기 때문에 모니터를 보면서 시간을 체크하고 분장 준비를 한답니다.

매주 수요일, 일주일에 하루지만 저에겐 가장 숨 가쁜 하루예요. 오후 5시에 켜진 불은 오후 10시가 되면 꺼져요. 모든 녹화가 끝나고 개그맨들이 분장실을 떠나면 저와 저의 후배들은 화장대와 탁자, 바닥에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화장품을 메이크업 박스에 다시 담아요. 또 하나의 숙제를 끝낸 우리 분장사들은 다시 '0'의 상태로 돌아가요. 다음주엔 어떤 과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설레임과 기대를 안고 집을 향합니다.

<사진 = 이호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