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업계의 제왕 경기 대원고속 허명회
-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qblOE1ajW8Q
- 1편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버스회사로 불리는 곳은 어디일까. 2000년 기준으로 시내버스, 시외버스, 고속버스, 관광버스 등을 비롯 2,000여대의 버스를 거느리는 대형 운송사업체 경기 대원이 바로 그곳이다.
경기대원은 국내 최대규모라는 버스운송사의 규모에 걸맞게 전국 단위로 버스노선을 운행하고 있다.
허명회, 그는 국내 최대의 버스운송사 경기대원의 사장이다. 하지만 그가 애용하는 자동차는 국내 제일의 버스운송 사업체를 이끄는 리더의 이미지에 걸맞지 않게 아주 낡고 허름한 구형 고급승용차가 전부이다.
그는 여행이라곤 신혼여행을 가본게 전부고, 해외는 커녕 비행기조차도 타본적 없는 몸이라고 한다. 그는 버스업계에 몸담은 이래, 여태껏 결석해본 날이라곤 13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경기도 광주 태생, 1961년 그는 경기여객의 말단중의 말단으로 입사를 하였다. 하지만 4시부터 시작되는 경기여객에서의 업무는 10시간을 훌쩍 넘길 정도로 오래일하는데다 고되고 힘들었던거. 때문에 초기에는 집안 사람들 특히 부인이 다른 일을 하라고 버스업계에 몸담는 것을 적극적으로 만류할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허명회는 꼭 버스업계에 뛰어들어 이분야의 최고의 자리에 오르겠다는 집념을 갖고 주변인들의 만류를 뿌리쳤다. 잠시간 독자적으로 사업을 해본 경험이 있는 허명회였지만 말단으로서의 잡일과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경기여객에 일할 동안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허배차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그는 일이 뜸하거나 없는 시간에도 나름대로 틈틈이 경기여객에서 조수를 따라다니며 차량 정비에 관련해 타이어, 연료 주입, 엔진 등에 관한 것을 배우곤 하였다. 버스업계 최고의 자리에 오르고자하는 꿈을 키우기 위한 하나의 과정인 셈.
허명회는 심지어 경기여객에서 인명피해를 일으킨 큰 사고가 발생했을 때에도 사장이나 임원진이 피해 유족들에게 조문하러 차마 가지못하는 걸 직접 나서서 갔다고 한다. 유족들이 술을 강제로 떠먹이는걸 어거지로 받아먹고 이에 내키지 않았던 유족들에게 실컷 두들겨맞기까지 했지만, 막상 그렇게하고나니 피해보상협상이 순조롭게 흘러갔다는게 그의 얘기.
그렇게 허명회는 경기여객에서 주목을 받게되고, 마참내 1967년 지입제로 운영되던 경기여객에서 자신의 차량을 드디어 보유할 수 있게 되었으며, 회사로부터 신임을 얻은 말단사원 출신 경기여객의 임원의 자리까지 올랐다.
허명회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독자적인 버스사업을 계획하였다. 그 와중에 서울의 어느 시내버스 회사에서 노선과 차량을 내놓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경기여객의 사람들을 비롯한 주변에서 허명회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손가락질하였다. 시내버스가 시외버스에 비해 들어오는 입금액수도 훨씬 못미치는데다, 시내버스 요금도 오랫동안 동결돼왔기에 과연 수익성이 있겠느냐는 것. 허명회는 되려 지금껏 동결되었으니 이제 오를때가 되었다고 맞받아치며 독자적인 버스사업 추진의 의지를 확고히 드러내었다.
그가 인수제의를 받은 노선은 의정부에서 종로를 오가는 13번 시내버스. 그가 일주일간 해당 시내버스 노선을 직접 타보며 하나하나 관찰해보는데, 만성적자를 내고 있다는 이야기와는 달리 워낙 사람들이 많이 이용해서 항상 초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황금노선으로 밖에는 안보이는데, 문제는 미아리 고개 구간이었다. 이 버스가 미아리고개를 지날때면 차가 퍼져 이용객들로부터 항의와 질타는 물론, 환불요청을 빈번하게 받다보니 운송수익을 크게 남기지 못하는 치명적인 결함을 갖고 있었다 한다.
1971년 12월 24일, 마침내 허명회는 13번 노선과 차량을 모조리 사들임과 동시에 서울에 대원여객이라는 독자적인 시내버스 회사를 설립하였다. 허명회 개인에게는 버스업계에 말단사원으로 몸담은지 10여년만에 경영자로 변신한 뜻깊은 날이었다.
대원여객은 창업하자마자 미아리고개에서 발생되는 근본적인 차량의 결함 문제부터 해소하고자 했고, 이에 대한 개선이 이루어지면서 이용승객은 늘어났기에 안정적인 수익을 취할 수 있었다. 또한 당시 기사와 안내양 등 직원들이 수익금이나 공금 등을 횡령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타 업체의 경우 신체수색 등의 수치스러움을 느낄수 있는 수준의 단속을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대원여객에서는 사장을 중심으로 꾸준한 교육, 신앙 활동여건 제공 등을 통한 정신교육과 식대 무상제공 등을 통한 근로자 비용지출 발생 원인 해소 등을 통해 버스업계의 고질적인 병폐를 해결해나가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그 결과 대원여객의 수익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허명회는 하루하루 늘어난 수익금을 세는 시간이 번거롭고 개인 시간을 빼앗겨 짜증날법도 했지만 되려 그는 그때 그 순간이 너무나도 즐거웠다고 이야기한다.
대원여객의 수입이 넘쳐나다보니 하루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허명회가 기사로부터 돈덩이로 가득찬 묵직한 요금통을 받으려다 놓치는 바람에 자신의 발을 짓눌려 크게 다쳤었는데, 그가 일하는 시간이 부족하다느껴 치료를 차일피일미루고 업무에만 집중하다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통증이 심해졌던 것. 그가 나중에 병원을 찾았을때 의사는 칼로 환부를 도려내는 수술과 함께 5~6일 정도 병원에서 입원하여 휴식을 취해야한다고 조언해주었다.
허명회는 날마다 처리할 업무도 촉박한 마당에 자신이 다친것때문에 회사에 자리를 오래비우면 안된다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의사에게 뜬금없이 “마취없이 수술을 하면 혹시라도 좀 더 빨리낫지 않겠냐”는 풍문에 도는 얘기를 던졌다. 의사가 근거없는 얘기라고 일축했지만, 되려 허명회는 말이 괜히 도는게 아니라고 ‘혹시라도’ 빨리나을지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에 의사에게 그냥 마취없이 바로 수술을 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이 때 허명회가 뭣모르고 진행한 마취없는 수술은 그가 세상에서 최고로 고통스러운 아픔을 겪는 순간이라고 하였다. 처음 칼이 닿을때는 멀쩡했지만 칼이 안쪽으로 깊이 파고들수록, 특히 다친 부분 깊이 칼이 살결을 파고들어 뒤집어내는 순간이 정말 말로 표현할수 없을만큼 아파 수술하는 내내 연신 비명을 질렀다고 한다.
이 정도로 허명회는 회사 일에 열정적이었고 모든 것을 헌신해왔지만, 가족의 입장에선 함께있는 시간이 무척 적다보니 아쉬움이 크지 않았을까. 그의 아들 허상준이 기억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과연 어땠을까.
버스업계의 제왕 경기 대원고속 허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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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하지만 동영상 볼수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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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동영상 다운받는곳 제가 볼수있는곳에는 없기에 부탁드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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