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안하면 나중에 커서 저렇게 돼"
얼음 위에 깔린 고등어를 정리하다말고
뭔가 하고 고개들어 쳐다봤다니
왠 맘충 하나가 초딩 손을 붙잡고
내 쪽을 쳐다 보고 있었다
겨우 서너발자국 쯤 떨어져 있었나
하긴 그땐 맘충이란 말도 없었드랬지
그냥 나보다 열 살쯤 많아보이는 아줌마였다
나는 속으로 그딴 말 하려면 들리지나
않게 할 것이지 했을 뿐
뭐라 대꾸도 제대로 못했던 나의 스물세살
그 바보같던 시절이다
지금 같으면
뭐라고 했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애 앞에서 그게 할말인가요?
나에 대해 뭘 안다고 그딴 소릴?
라고 맞받아쳤을테지만
기억엔
그때가 스물세살 중 뜨거운 여름이었다
복학이 반 년이상 남은 시점에 전역했던지라
어서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했던 시절이었다
전역한 바로 다음 날 아침을 든든히 먹고
버스를 잡아타고 농수산시장에 갔다
그 중 가장 크고 일하는 사람들이 생기있어
보이는 수산가게로 들어가서 일자리를 달라고 했다
사장님이 나오더니 요새도 이런 놈이 있냐며
날 끌고 어딘가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아까보단 좀 작아보이는 가게였고
그곳에서 사람을 구하는걸 알고는 날 소개시켜주었다
띠동갑쯤 되어 보이는 살집 좋던 사장 형님은
처음 보는 나의 이름과 연락처만 물어보고는
담날부터 포터키를 쥐어주어 퇴근 하게 했다
입대 전에 면허따고 처음 운전대를 잡은 것이었는데
그 야밤에 집까지 몇 키로를 라이트도 못키고
갔으니 사고 안난 것만도 천만다행이었다
그렇게 수산물가게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경매 물건을 뗘다가 아파트 장에 가져가서 판매하는 일이었는데 그때 사수옆에서 보조로 이것저것 배운탓에
지금도 왠만한 생선 손질이나 오징어 껍질정도는
손쉽게 벗겨낸다
새벽6시 출근해서 물건 싣고 한 두시간 이동해서
다 팔고 돌아와서 청소하고 정리하면 밤10시쯤이었다
주5일에 월 100만원이었나
생선파는게 어렵진 않았는데
덥고 졸리고 힘들었던 기억뿐이다
여하튼 그렇게 뜨거운 땡볕아래
허드랫일이나 하고 있는 남루했던 나에게
그 맘충은 그렇게 자식교육을 했던것이다
"공부안하면 나중에 커서 저렇게 돼"
그때 충격 받아서 죽어라고 공부해서
현재 판검사라도 됬다고 하면
한낱 주작글이겠고
그냥저냥 배우자 만나 아기 낳고 월급받아
그달그달 살아가는 평범한 가장이 되었다
아마 그때 내가 번개같이 대들지 않았던게
난 돌아갈 학교가 있고 내 길이 이게
아니라는걸 알았기 때문이었을수도 있겠지
같이 일했던 가방끈 짧던 사수 형은
가끔 생선을 썰다 말고
주위 상인이나 손님들에게 내가
대학생이라고 자랑을 해댔다
아마도 그 형은 그렇게 위안을 삼고 싶었던 것일까
이제
추억은 접어두고
지평생막이나 한잔 걸쳐야 겠습니다
그자식도 별반 다르지않을거구.
우리나라 가장들이여
화이팅!
당시 자신의 사수와 같이 긴급 업무로 회사옷 입고 있었고 손에는 커다란 셈플을 들고 있었는데 왠 아주머니 한분이 아이에게 큰 소리로 공부안하면 나중에 저렇게 된다고...
제 사수는 고대출신 석사이고 그 옆분은 서울대 박사출신...거기다 둘다 국내에서는 내 놓으라는 대기업 연구소 소속인데 순간 할말을 잊었다 하더군요
눈에 보이는게 다가 아닌데 왜 그런식으로 그것도 다 들으라고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하는지 참....
아이가 참 이쁘네요 남편분이 유전자가 참 우수하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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