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연대 105미리 포차중 운행차 운전병 출신으로서 섭섭하네요.
그당시에 105미리 포차중 운행차라고 이병때도 시도때도 없이 운행을 나갔었는데.
그 배차담당 병장을 부모님이 하루 외박나오게해서 잘먹고 잘 재우고 용돈가지 두둑히 주고간 이후
하루도 부대내에서 잔업안하고 하루종일 나가있는 통신부대에 매일 배차를 해줬죠.
그당시 통계게 준위님이 성격도 차분하고 맨날 같이 나가서 많이 친해졌었습니다.
덕분에 화학산 꼭대기도 여러번 올라가 보고 가는동안 먹을거라고 도시락 싸갔는데 통신대 밥하는 곳이 딱 40명분만 하는곳이라 밥이 군대밥 치고는 아주 맛있었습니다. 그러나가 대대장 짚차로 업글시키려는걸 여기부터는 비밀이라서.... 사창리 나름 참 추억이 서린곳인데 나중에 한국 들어가면 한번 가봐야 겠어요.
자부심이 있는 부대 였는데 ,,,,
아쉽네요 !!
서울역 헌병들도 이기자 부대는 많이 봐 줬다는 ^^
27xx 포병연대 259FA 3BA 출신입니다.
화악산 정기를 이어받은
자랑스런 이기자부대
다시한번만 얘기하고픈
그대의 늠름한 그모습
캬라멜 고개를 넘던그날
이기자부대가 있었네
잊지말고서 다시뭉치자
아아아 이기자친구들(이기자!)
아아아 이기자친구들(이기자!)
사창리계곡을 떠나가는
그대의 정다운그얼굴
다시한번만 얘기하고픈
그대의 추억이 깃든곳
언덕을 넘어서 오던그날
이기자부대가 있었네
잊지말고서 다시만나자
아아아 이기자친구들(이기자!)
아아아 이기자친구들(이기자!)
259는 사방거리 쪽으로 이전한지 오래됐습니다.
이등병때 부터 기계화 포장 짓지 시작해서 상병때 완공했죠.
눈만 뜨면 돌나르고 시멘트 비비고...작업량 못 채웠다고 인사계가 포차 라이트 켜고 공사를 시켰어요.
그렇게 지은 기계화 포상을 지금은 2군단 100대대가 사용중입니다.
그당시에 105미리 포차중 운행차라고 이병때도 시도때도 없이 운행을 나갔었는데.
그 배차담당 병장을 부모님이 하루 외박나오게해서 잘먹고 잘 재우고 용돈가지 두둑히 주고간 이후
하루도 부대내에서 잔업안하고 하루종일 나가있는 통신부대에 매일 배차를 해줬죠.
그당시 통계게 준위님이 성격도 차분하고 맨날 같이 나가서 많이 친해졌었습니다.
덕분에 화학산 꼭대기도 여러번 올라가 보고 가는동안 먹을거라고 도시락 싸갔는데 통신대 밥하는 곳이 딱 40명분만 하는곳이라 밥이 군대밥 치고는 아주 맛있었습니다. 그러나가 대대장 짚차로 업글시키려는걸 여기부터는 비밀이라서.... 사창리 나름 참 추억이 서린곳인데 나중에 한국 들어가면 한번 가봐야 겠어요.
논산 갔다
대전 둔산동 통신학교
다시 춘천 그리곤 77연대
난 이 부대가 기자들만드는 부대였는줄 알았는데
옆 동기가 넌 어디야? 이기자래 하니 넌 좃됬다 77만 가지마라
그데 77갔네 내 맘되로 되나 ㅋ
아 사창리 여관이 당시 4-5만원 어이없었지
군인들 피 빨아먹고 살던지역
상봉동 버스 터미널서 집까지 다시 2시간반
집에 갈땐 좋터만 복귀 할 땐 아 ㅆ ㅂ
다음 주 중 화악산이나 차 타고 가야 것다
1. 저 출산
2. 편제의 변화 사단(덩치가 큼, 느림 ) -> 여단(작지도 크지로 안으며 빠른 기동)
3. 개때전술 -> 자동화,기계화
육성한 기계화보병사단들도 반토막되었습니다. 6개 기보사단들중에서 3개가 해편되었습니다.물론 장비들은 보병사단이나 기갑여단들에게 재배치되었지만요.
이기자
제 매형이 사창리 근무하셔서 자주 놀러갔었는데 음식점 가도 그렇게
눈탱이 느낌이 없었어요.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고 양도 많이 주고
이기자회관은 갓성비 고깃집이였는데 해체라니 아쉽네요.
2316 부대 77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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