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국노가 독립운동가로 탈바꿈하는 행태가
책이나 기고문에 독립운동가가 나열된 곳에
매국노인 조상의 이름을 삽입 시키고
어디어디 책에, 잡지에 독립운동가로 기고되어 있다고 선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매국노의 비석 등이 많은데
매국노인 걸 알고 철거할려면 극렬히 반대하고
법적으로 걸고 넘어집니다.
골치 아픈 현실이죠.
매국노 밑에 매국 후손인 거죠.
안상호(1874~1927)는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혈혈단신 상경하여 마포의 친척 집에 의탁하면서 1894년 관립일어학교를 졸업하였다. 그는 명동에 있던 한성병원의 와다 야치호(和田八千穗) 원장을 알게 되었다. 그로부터 일본 유학을 권유받은 안상호는 1896년 정부 유학생으로서 일본 유학의 길에 올랐다.
그는 1898년 11월 초 4년제인 도쿄자혜의원의학교에 입학하였고, 1902년 7월 졸업에 앞서 의술개업 시험에 합격했다. 이는 한국인으로서 처음으로 일본에서 개업할 권리를 얻은 것이었다. 1902년부터 부속병원에서 일을 하던 안상호는 1903년 의친왕의 왕진 요청을 받은 이후 의친왕을 보필하게 되었다.
그는 1907년 3월 21일에 귀국하여 종로에 개업을 하면서 1910년부터 전의로 활동하였다. 1919년 1월 22일 고종 태황제가 덕수궁 함녕전에서 뇌출혈로 쓰러지자 당직의사였던 그는 일본인 의사 모리야스 랜키치(森安連吉)와 함께 진료하였는데, 끝내 생명을 구하지는 못했다. 이로 인해 그는 일본인의 사주로 고종에게 독약을 투약했다는 등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소문에 둘러싸여 있다.
얘넨들의 특징은 민족, 항일, 그런거 얘기하면 북한에 대한 스탠스를 끌고 와서 희석시키는 논리를 갖다 붙인다는 것. 독재와 친일을 단호하게 자르는 민주시민 거의다가 남자라면 병장 제대한 사람이 제일 많다. 그리고 북에서 허튼 짓 벌이면 아직도 사격할 줄 아니까 언제든 나갈 준비 되어 있다. 북한을 이뻐하는 게 아니라 전쟁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것이고, 북한은 우리 대한민국이 꼭 접수해야 할 미수복 영토라는 것도 강하게 박혀 있다. 왜 친일매국노 욕하면 나타나서 북한 얘기로 촛점을 흐리니 ? 친일파랑 뭔 관계여 ?
주인장 함부로 조작글 퍼나르지 마세요. 안상호는 분명히 일본 유학 중인 1904년 10월 18일부로 조선정부에 의해 의학교 부교관(판임관 6등)에 선임되었지만, 유학생인데 정부관리란 신분이 부담스러워 몇번의 거듭된 청원 끝에 자진해 사직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1907년 귀국 후에는 다시 대한제국 조선의학교 교관으로 임영되었습니다.
안상호는 분명 대한제국 조선의학교 교관으로 근무했고 일본인들의 경성의사회에 대항하여 경성 의사연구회에서 김익남은 회장 안상호는 부회장으로 활동했습니다. 조선인 처녀를 만나기 힘들었던 35세 노총각 안상호는 의친왕 저택의 비서이던 가와구치 이소코와 조선인의 중매로 결혼한 것 이외에는 평범한 의사의 길을 걸었으며 특별하게 친일로 보이는 행적은 없습니다. 가와구치 이소코가 조슈번의 무사 집안 출신이란 사실은 안상호의 친일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총독부가 주도한 대한국민추도회 등 각종 단체에 이름을 올리기는 했으나 그것으로 친일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유학파 조선 개업의 1호라는 유명세 때문에 각종 단체들의 이름 빌리기 요구를 거절하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받았으며 3.1만세운동의 민족대표 33인중 하나인 독립운동가 오세창과 한일합병을 반대하고 흥사단을 창립한 유길준도 안상호보다도 상급인 대한국민추도회 발기인이었습니다. 오히려 안상호는 독립유공자 오희원이 신민회 105인 사건에서 무죄를 받는 결정적 알리바이 증거를 제공했습니다.
하영 방송에서 집안 언급이 없었다면
영원히 묻혔을지도 ...
지금이라도 진실 알게 되어
그들 단죄할 명분이 생겼잖아요
친일 청산 못한게 천추의 한인데
재산환수에 이 기회에 뿌리 뽑아야지요
애초부터 스브스가 2찍 일베 방송이자나요. 일베의 원조가 왜구이고.
그것도 3.1절 전후면 이것도
노린거 같은데...
ㅆ방새
우리 코리아놈사는 국가에서는 미풍양속 수준인께
욕할꺼 없는거고
애플 망고 좀 처자시면서 일해
적당히 지랄 했으면 노대중이로 갈아타고 ㅋㅋㅋㅋㅋㅋㅋ
하영 방송에서 집안 언급이 없었다면
영원히 묻혔을지도 ...
지금이라도 진실 알게 되어
그들 단죄할 명분이 생겼잖아요
친일 청산 못한게 천추의 한인데
재산환수에 이 기회에 뿌리 뽑아야지요
가풍이란걸 무시 할 수 없더라구요.
상세히 살펴 널리 알립시다.
책이나 기고문에 독립운동가가 나열된 곳에
매국노인 조상의 이름을 삽입 시키고
어디어디 책에, 잡지에 독립운동가로 기고되어 있다고 선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매국노의 비석 등이 많은데
매국노인 걸 알고 철거할려면 극렬히 반대하고
법적으로 걸고 넘어집니다.
골치 아픈 현실이죠.
매국노 밑에 매국 후손인 거죠.
그는 1898년 11월 초 4년제인 도쿄자혜의원의학교에 입학하였고, 1902년 7월 졸업에 앞서 의술개업 시험에 합격했다. 이는 한국인으로서 처음으로 일본에서 개업할 권리를 얻은 것이었다. 1902년부터 부속병원에서 일을 하던 안상호는 1903년 의친왕의 왕진 요청을 받은 이후 의친왕을 보필하게 되었다.
그는 1907년 3월 21일에 귀국하여 종로에 개업을 하면서 1910년부터 전의로 활동하였다. 1919년 1월 22일 고종 태황제가 덕수궁 함녕전에서 뇌출혈로 쓰러지자 당직의사였던 그는 일본인 의사 모리야스 랜키치(森安連吉)와 함께 진료하였는데, 끝내 생명을 구하지는 못했다. 이로 인해 그는 일본인의 사주로 고종에게 독약을 투약했다는 등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소문에 둘러싸여 있다.
신평생리학교과서를 번역발간하여 사립학교 교과서로 사용됨.
경력 도둑질이 디폴트값?
도둑질에 인체실험? 에 너무 심각한데????
80%세금낼때까지는
재산압류
뺏은 더러운 집안을
자랑하고 다닌거냐?
친일의 무리들을 철저하게 처단해야 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라고 봅니다.
나중에 뭐가 진실이고
뭐가 거짓인지
논란에 휩싸이게 됩니다.
어쩜 저렇게 줄리랑 하는 짓이 똑같았을까
반납해야지.
일본으로 가면 모국으로 가는 느낌..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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