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원래 고기보다 생선을 좋아하고,
구운고기, 그 중에도 돼지고기는 먹으면 바로 몸이 붓고 속이 불편해져서
웬만하면 피하는 편이다.
육사시미나 생간, 등골 등 생고기나
삶은 고기는 좋아하는데, 구운 고기는 그렇게 체질에 안 맞을 수가 없어서
회식때 삼겹살집 가면 항상 고역이였는데,
나 지금 이 순간 항정살이 너무나 먹고싶다...
항정살 두 점 상추에 터억 올리고 밥 한 숟갈 흐뭇하게 얹어서 마늘 고추 쌈장에
푹 찍어 넣고 왼쪽 오른쪽 접고 위 아래 접으면 예쁜 쌈이 하나 완성 되겠지. 그걸
한 입에 우걱우걱 우겨 넣으면
볼때기가 터질것 같아서 처음엔 씹기가 굉장히 힘들겠지. 입은 다 다물어지지도 않아서
붕어마냥 오므려 열린 동그란 입술 사이로는 초록쌕 쌈의 궁둥이가
보이는게 좀 민망하기도 할 거야. 그래도 뻐근한 턱을 달래서 어떻게든 한 번, 두 번,
세 번 씹다보면
쌉쌀한듯 상큼한 상추의 얇은 보호막은 금방 뚫리고,
그 안에 욕심껏 올렸던 항정살의 달콤하고 따뜻한 지방질이 어금니에 사각사각 씹히겠지.
어째서인지 항정살의 지방은 삼겹살보다 조금 사걱거리는 느낌이란 말이야.
뒤이어 살코기의 묵직한 구수함이 바로 따라붙어서 지방의 맛을 감쌀 꺼야.
느끼하게 느껴지기 직전에 단백질과의 조화로 구수하고 진한 맛으로 상승시켜주지.
그렇게 두어 번 더 씹다 보면 이 사이에서 드디어 터지는 고추와 마늘의 알싸함은
묵지근한 맛이 바닥으로만 가라앉지 않도록 날카로운 악센트를 선사할 것이고
이 모든 맛 위로 한 알 한 알 탄력있고 윤기나에 지어진 달콤한 흰쌀밥이 뒤섞이면서
항정살의 기름을 밥알 사이사이 스며 받으며
고추와 마늘의 강렬함을 상냥하게 보듬으며
여신과도 같은 포용력으로 마침내 모든 맛을 끌어안아 완성시키겠지.
그렇게 입 안에서 쌈이 조금씩 스러져갈 때
소주 한 잔 탁 털어 넣고 이 작고 완벽한 세계와의 이별을 재촉하면
내 왼손바닥엔 이미 상추 한 장이 더 올려져 있을 것이요,
오른손에 든 젓가락은 숯불 위 치이이 소리를 내고 맑은 기름을 한 방울 또옥
흘리며 요염을 떠는 반지지르르한 다음 항정살을 향해 있을 거야.
feat.호란
우리동네에 항정살을 차돌박이 처럼 얇게 떠서 파는집이 있는데 정말 맛이 일품입니다.
먹고 먹어도 또 먹고 싶은 그런 맛 ... ㅜㅜ
채식주의자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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