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양국을 대표하는 럭셔리 중·준대형 승용차를 한 자리에서 타봤다. 이번 시승식은 현대자동차가 전국 지점을 돌며 '글로벌 No.1 테스트 드라이빙'이란 이름으로 수입차와 그랜저의 성능과 품질을 소비자로 하여금 직접 평가토록 한 행사다. 그랜저의 최상급 모델인 S380과 렉서스의 중형 세단 ES350이 시승차로 나왔다
그랜저TG
그랜저는 한국의 대표적인 대형 세단이었다. 90년대의 '각 그랜저'와 뉴 그랜저는 한국 대형 세단의 지평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큰 차체에 높은 배기량과, 주위를 압도하는 카리스마는 아직도 그랜저의 가치를 높여주는 요인이다. 그러나 그랜저XG부터 그랜저는 준대형차로 탈바꿈한다. 이전까지의 그랜저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게 젊고 세련되게 변신했다. 뉴 그랜저 단종 후 한층 더 고급스러워질 그랜저의 부활을 손꼽아 기다리던 구 그랜저 오너들은 작아진 그랜저를 보며 큰 실망과 함께 작아진 그랜저를 외면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랜저의 가치마저 작아진 건 아니었다. 그랜저XG 출시 후 대형 세단과 중형 세단의 중간 위치에서 고군분투하며 다시 한 번 그랜저의 명성을 확인시켰다.
그랜저는 나이를 거꾸로 먹었다. 지난 모델이 강한 카리스마와 높은 품격, 넘치는 멋스러움의 중년이었다면 현재는 활발하면서도 지적인 젊은이의 모습이다. 그 만큼 구형보다 대중적이다. 그러나 중년의 모습을 완전히 버린 건 아니다. 뒷좌석 승객을 위한 슬라이딩 시트와 후방 에어컨, 겨울을 대비한 전 좌석 히팅 시트, 전동식 세이프티 선루프, 후방카메라, 차음 글래스, 턴 시그널 아웃사이드 미러, DVD 내비게이션 시스템 등 운전자와 탑승자까지 고루 배려하는 건 이전과 같다.
반면 렉서스 ES350은 굵직한 옆선이 마치 스포츠카를 연상시킨다. ES350은 한국 수입차시장에서 판매 1위를 달리고 있는 막강한 상대다. 푹신푹신한 승차감, 조용한 엔진음 등이 한국인을 위한 차인 듯 했다. 시인성 좋은 계기판이 눈에 띄었다. 햇빛이 강한 낮이었지만 ES350의 계기판은 완벽히 주행상태를 알려줬다. 주행중 조수석 안전벨트를 풀었을 경우 다시 착용할 때 까지 경고음이 울렸다. 어찌 보면 사소한 것이지만 안전이라는 큰 틀에서 사소한 부주의도 허용하지 않았다. 듀얼 프론트 시트 메모리 시스템, 마크레빈슨 프리미엄 사운드 시스템, 좌우 독립제어 전자동 에어컨 등 운전자를 위한 편의장치는 풍부한 편이지만 내비게이션과 후방카메라가 없는 게 아쉬웠다.
두 차의 제원을 비교하면 먼저 차체 크기는 그랜저가 조금 크다. 그랜저는 길이×너비가 4,985×1,850mm이고, ES350은 4,860×1,820mm다. 최고출력과 최대토크는 그랜저가 264마력과 35.5kg·m, ES350이 277마력과 35.3kg·m다. 최고속도는 230㎞/h로 두 차가 같고, 연비는 그랜저가 8.6㎞/ℓ인 데 비해 ES350이 9.8㎞/ℓ로 높다. 0→100㎞/h 가속시간은 그랜저가 7.2초, ES350이 7.0초다. 타이어는 그랜저가 235/55R 17, ES350은 215/55R 17이다. 제원표 상으로는 차체는 그랜저가 다소 크고, 성능은 ES350이 약간 앞서는 걸 알 수 있다.
본격적인 주행을 시작했다. 그랜저의 엔진음은 실내로 극히 일부가 유입됐다. 조용한 차가 좋은 차라고 인식하는 국내 소비자들에겐 호평받을 일이다. 엔진음이 너무 조용해 오히려 노면소음이 더 크게 들렸다. 조용한 엔진음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ES350은 시동을 걸 때는 꽤 큰 소음으로 운전자를 놀라게 하다가 점점 조용해진다. 주행 시에는 더욱 철저히 엔진음을 차단한다. 액셀 페달을 급히 밟아도 차체 움직임만으로 속도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다.
ES350의 엔진은 한 박자 늦게 반응한다. 급발진 방지와 주행 시 안전을 위한 세팅으로 보인다. 저속에서는 다소 답답하지만 중속으로 갈수록 운전자의 의도를 정확히 반영한다. 그랜저의 엔진은 성격 급한 한국인의 특성을 잘 반영했다.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금방 뛰쳐나갈 듯 하다.
그랜저의 서스펜션은 편안한 승차감과 스포츠 주행을 두루 고려한 것 같다. 시속 40km에서 급히 운전대를 돌리면 쏠림이 확연히 드러났던 그랜저XG와는 달리 그랜저는 노면을 움켜쥐며 돌아나갔다. 고성능을 지향하는 현재 자동차시장에서 엔진의 출력뿐 아니라 이를 더욱 빛나게 해줄 코너링 성능 개선에 큰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그랜저는 앞바퀴에는 더블 위시본 타입, 뒷바퀴에는 멀티링크 타입의 서스펜션을 장착했다.
렉서스 ES350
그랜저에 달린 5단 자동변속기는 수동 모드의 기능도 갖추고 있다. 지루한 운전에 약간의 재미를 준다. 반면 반응이 다소 느린 게 흠이다. 그랜저의 깜박이 소리는 무척 독특했다. 깜박이에도 소음재를 집어 넣은 것으로 판단된다. 둔탁하면서도 꽤나 묵직한 소리가 난다. 브레이크 또한 승차감을 위해서인지 부드럽게 세팅했다. ES350이 날카롭고 정확하다면, 그랜저는 부드럽고 정확하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면 목표지점까지 부드럽게 도달한다.
두 차 모두 안전장비는 풍부하다. 전면의 듀얼 에어백은 기본이며, 앞좌석뿐 아니라 뒷좌석까지 설치된 사이드 에어백 및 커튼 에어백을 갖춰 탑승자의 안전을 보호한다. ES350에 적용된 듀얼 프론트 SRS 무릎보호 에어백이 눈에 띈다. 또 차제자세제어 시스템(VDC), EBD-ABS, 후방경보장치, HID 헤드라이트 시스템 등 전자장비도 풍부한 편이다.
이번에 시승한 그랜저의 색상은 은색이었다. 뒷좌석의 각종 편의장비로 봐서는 일반 운전자가 몰기에는 다소 과분하다. 쇼퍼 드리븐카의 역할을 원한다면 젊어진 그랜저에 검은색 양복을 입혀 중후한 맛을 내는 게 좋을 것 같다. ES350은 277마력의 강력한 동력성능과 운전자 중심의 편의장비를 갖추고 있다. 검은 양복보다는 백색과 은색 재킷이 어울린다. 따라서 어찌 보면 ES350의 비교상대는 그랜저 3.3이 어울릴 듯 하다. 둘 다 오너 지향적이면서 강력한 동력성능과 젊고 세련된 이미지를 풍긴다.
ES350 풀옵션의 미국 판매가는 3만5,000달러 전후인 데 반해 국내 판매가는 6,360만원으로 미국보다 80%나 비싸다. ES350이 수입차시장에서 우수한 품질과 성능으로 선전하고 있으나 동급의 국산차보다 2배 이상 비싼 게 흠이다. 그랜저 S380은 4,027만원이다.
어쨌든 이번 비교시승을 통해 국산차의 발전과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렉서스는 토요타의 프리미엄 브랜드다. 자동차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도 고급 브랜드 자리를 확고히 차지하고 있다. 그랜저도 미국의 대표적 소비자평가지인 컨슈머리포트에 가장 신뢰할 만한 자동차로 선정됐으며, 세계적인 자동차조사기관인 JD파워가 발표한 ‘2006년 자동차 품질 및 디자인 만족도 조사'에서 가장 사랑받는 대형 승용차로 선정됐다. '글로벌 No.1 테스트 드라이빙은'은 현대자동차의 이 같은 이유있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행사였다.
출처 : 오토타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