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깼다. 머리맡에는 작은 등만 밝게 빛나고 아직도 한밤중이다. 일하러 갈 시간은 많이 남았지만 알람이 울리기 전에 깨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깊은 잠을 잘 수가 없다. 12시, 12시 30분, 1시... 중간중간 잠들었다 깨지만 결국 더이상 누워있지 못하고 그냥 일어난다.
물을 한잔 마시고 간단히 먹을 것을 챙겨 먹는다. 요즘은 속이 편하지 않아 빵을 먹는 것도 부담스럽다. 바나나를 하나 쪼개 먹고 우유 한잔을 마시고는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선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시간, 하루를 일찍 시작하는 사람들에게는 적당한 시간이지만, 그래도 새벽 2시 반은 너무 이른 시간이다.
내가 일하는 곳은 30분 거리. 그나마 새벽에는 차가 막히지 않아 덜 답답하다.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땐 한시간 이상 걸리기도 하니 시간 낭비가 크지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모두들 가까운 곳에서 일을 하라고 권하지만 어디 일을 구하는게 내 뜻대로 되는가. 필요로 하는 곳에 가야지.
사람들은 정작 자신이 겪어보거나 하지 않는 일은 이해하지 못한다. 같은 곳에서 일하는 한 친구는 내게 "욕심"이라는 단어를 썼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우리 자신의 생활 수준이 올라갈수록 지출은 커지고 돈은 더 필요해진다. 일을 더 해야 하고 좀 더 벌면 또다른 지출이 생긴다. 이런 삶의 반복, 이게 평범한 이들의 하루 살이다. 나도 평범해지고 싶다.
새벽 잠이 없어 밤에 일을 하기 딱 좋겠다는 주위의 말과 달리 사실 나는 12시 이후 깊이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불면증의 일종에 시달린다. 본업에서 받는 스트레스도 잠들지 못하게 나를 깨우는데다 부업으로 하는 일도 이른 시간에 일어나야 하는 강박관념 때문에, 알람이 울리기 전에 일어나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스스로 기상 시간을 그렇게 만들어왔다. 조금이라도 더 자려면 남들이 저녁 먹을 시간에 눈을 붙여야 하고, 그건 결국 잠많은 "게으른" 인간으로 평가받게 만들기도 한다.
한 마디... 세상 누가 차가운 새벽공기 마시며 힘든 육체노동을 즐기며 하겠는가.
벌써 5년이다. 한해 두해 경력이 쌓여 이제 5년차에 접어든 나로선 어딜 가든 일 자체에 부담은 없다. 이제는 새로운 사람을 사귀고 같이 일한다는 자체가 약간 귀찮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늘 주어진 현실에서는 노력한다. 다른 직원이 말했듯이, 한 사람의 모습은 한두번의 노력이나 실수로 만들어지는게 아니라 꾸준함에서 오는 것이다. 성실하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왕 하는일 열심히 하자는 생각에 그저 묵묵히 할 뿐이다.
처음에는 나도 그랬다. 힘들고 귀찮고 더럽고 지루하다. 어떻게든 시간을 때우고 돈이나 받아가자는 생각이다. 생각이 이러면 힘은 더 들고 하기도 싫고 매사에 사람들과도 부딪힌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고 기왕 하는거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으로 달려들면 그때부터는 일이 달라진다. 모든 것이 마음에서 나온다는 사실, 이 작은 일에서도 느낄 수 있다.
나는 청소부다. 사람들이 버리고 간, 직원들이 정리하며 남긴 온갖 쓰레기와 더러운 것들을 청소한다. 쓸고 닦고 광내고... 그런 일이 있기에 매장은 항상 깨끗하다. 나도 몰랐다 일을 하기 전에는, 이런 일이 있는지조차. 내 인생 살며 걸레와 빗자주를 만지며 먹고 살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아니 알았던들 과연 원했겠는가.
아이는 부담스러워했다. 부끄러워했다. 이제야 시간이 제법 지나 그러려니 하는 생각, 현실이 이렇다는 것을 조금은 알게된 나이지만, 몇년 전 어린 시절의 아이는 아빠의 직업을 부끄러워했다. 휴일이면 놀러가지도 못하고 일년 내내 냄새나고 더러운 옷을 입고 새벽같이 나가는 아빠를 자랑스러워할 수는 없는 것이다. 좀 더 자라면 알게 될거다. 세상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 돕고 각자의 역할을 하며 어울려 사는 곳임을. 그거면 된다.
하는 일이 없이 생활비만 쓰고 있을 때, 남들보다는 조금 빨리 시작하기는 했지만, 주위에서 소개받은 이 일은 그야말로 새로운 세상이었다. 이렇게도 먹고 살 수 있구나 하는 생각, 당장 닥쳐오는 집세를 감당할 수준만 되어주어도 좋았고, 경력 체격 기타조건 전혀 따지지 않고 그저 새로운 환경에서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체가 너무도 좋았다. 그게 벌써 5년째 발목을 잡는(?) 일이 될 줄이야.
사람들은 타지에서의 생활에 은근한 기대를 건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태어나 살아온 곳을 떠난다는 것은 보다 나은 현실과 미래를 꿈꾸며 찾아가는 것이다. 살아감이 현재와 같다면 굳이 고생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현실은 이거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고. 나은 것이 있다면 사회적으로 스트레스 받거나 하지 않고 적어도 미래는, 아이들은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거라는 막연한 기대(그리고 그를 뒷받침하기 위한 현실의 피나는 노력)를 할 수 있다는 정도?
어떤 것이 옳고 더 나은지에 대한 논쟁은 끝이 없다. 절대적인 기준이기 보다는 각자의 주어진 삶과 가치관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니. 하지만 젊은 나이에 한번은 살아볼만한 일이 아닌가. 그것이 먼 훗날 인생을 되돌아볼 때의 짧은 추억이든, 긴 인생을 새롭게 다지고 출발하는 변곡점이든, 삶의 영양분으로 자리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오늘도 달려보자...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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