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어디를 가도 미군이 주둔하는 곳에는 ‘기지촌’이 생기게 마련이다. 우리나라 역시 웃음과 몸을 파는 젊은 여자들, 이른바 ‘양공주’들이 성업하던 때가 있었다. 양공주 소리도 서러운데 미군과 하룻밤 풋사랑에 덜컥 아이라도 낳게 되면 그 아이는 ‘튀기’라 불리며 사회에서 냉대 받고 멸시 당하는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다.
혼혈가수 인순이와 박일준의 인생다큐를 보면 당시 사회가 혼혈에게 얼마나 배타적이었나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말 그대로 ‘튀기’란 종이 다른 두 동물 사이에서 태어난 새끼를 지칭하는 말로, 지금은 인종차별이라는 이유로 사용하지 않는다.
‘잡종강세’는 잡종 제1대가 종합적인 생활력에 있어 양친의 계통보다 우수한 생활력을 가진다는 말이다. 주로 작물이나 가축의 품종 개량을 위하여 품종간, 변종간, 이종간의 교배에 잡종강세의 특성을 이용하고 있다.
이유를 막론하고 이 두 단어는 아무리 좋은 의미로 해석한다고 해도 사람에게 비유하기에는 결코 자유롭지 못한 단어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요즘 “튀기”와 “잡종강세” 이 두 단어가 우리 사회를 흔들고 있다. 정현율 익산시장이 지난 달 11일 원광대학교에서 열린 ‘2019년 다문화가족을 위한 제14회 행복나눔운동회’에서 한 발언이기도 하다.
이 행사는 익산시의 지원으로 익산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주관하였으며, 기관단체장을 비롯하여 다문화 가족 700여 명이 참석한 규모 있는 행사였다. 정헌율 시장은 개회식 축사에서 문제의 발언을 했다고 한다.
근데 여기서 짚어볼 점이 하나 있다.
왜 문제의 발언 이후 한 달여가 지난 시점에서야 사회적 이슈가 되었을까 하는 점이다. 이번 사태가 불거진 것은 익산시의회 모의원이 의정활동 중 정헌율 시장의 발언을 문제 삼고부터라고 한다. 혹자는 내년 총선을 겨냥한 정치적인 공세라 치부하지만 지역에서조차 큰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공직사회의 수직적 이해관계는 차치하더라도 함께 있었던 다문화가족과 다문화관련 관계자들은 왜 말이 없었을까?
이 문제에 접근하려면 먼저 다문화의 시대적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 다문화사회가 구성된 시점은 88서울올림픽 이후로 보면 된다. 올림픽을 통하여 세계에 한국이 알려지면서 90년대 초반부터 다문화1세대가 정착하게 되었다.
이후, 정부는 다문화사업의 정책기조를 30여 년간 ‘인식개선’에 두었다. 이 정책으로 혼혈아라는 이유로 놀림거리가 되고, 군대는 물론 공무원조차 지원할 수 없었던 1970년대 인순이와 박일준은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이를 통하여 한국사회는 ‘다른 것’에 대하여 많은 인식개선이 이뤄진 것 또한 사실이다. 정헌율 시장의 발언이 국민적 공분을 사는 것도 바로 같은 맥락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모의원의 발언이 있기 전까지 이번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인 익산시에 거주하는 다문화가족과 다문화관련 종사자들은 말이 없었다. 이주여성들의 한국어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할 수도, 행사 준비에 바빠 못 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참석한 700여 명 전부가 그랬을까?
지금 익산시청 게시판에는 ‘튀기 자녀 2명을 둔 아빠입니다.’ 라는 등 자조 섞인 항의성 글이 도배되다시피 하고 있다. 앞으로 제2의 정헌율이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번 일을 계기로 다문화가족과 관련 종사자들도 항상 수혜의 대상과 사회의 이방인으로 ‘흡수?통합’의 당사자라는 피해의식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잘못된 것에 이의를 제기하고, 자신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의 근간이기도 하다. 오히려 인식개선의 대상은 이번 사태에 공분하는 대다수 국민이 아니라 그 주체인 다문화 구성원들이 아니었을까 자문해 본다.
특히 이주여성들의 초기 한국 정착에 거의 ‘전부’라 할 수 있으며, 교육?육아?취업?상담 등 전반적인 지원을 하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누구보다 다문화를 이해하고, 함께 해온 단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익산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경우 지금까지 단 한마디도 말이 없다.
다문화가족의 대변인인양 주축에 서 있다가 정작 필요할 때는 묵묵히 본연의 임무에만 충실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시의 재정적 지원을 받는 단체여서인지 몰라도 이번 사태를 지켜보며 그 대응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정작 다문화사회에 대한 ‘인식개선’은 누구에게 필요한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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