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글과 댓글은 뜨문뜨문하긴 하지만 하루에도 몇번씩 보배를 수시로 들락거리는 회원이기도 합니다.
먼저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애인 없으신 분은 올해 이쁜 사랑 만나시고
모든일 잘 되시길 바래요 ^^
먼저 제 얘기는 아니구요. 20여년을 함께한 친한 형님의 이야기 입니다.
13살 초등 6학년때부터 친구가 되어 27살 정도 까지 연락이 닿다가 어느 순간부터 연락이 두절되게 되었답니다.
그때는 휴대폰도 드물었고 삐삐와 집전화가 유일한 수단이라 둘중 한명이 번호가 바뀌거나
이사를 하면 찾기 쉽지 않았던 시기 이기도 합니다.
----------아래부터는 형님이 제게 보배온 이메일 내용입니다--------------------
형님의 신상
이름 : 김종훈 (72년생)
살던곳 : 정릉
찾는분 신상입니다.
이름 : 강흥업 (빠른 73년생)
살던곳 : 서울 성북구 정릉동
같이 나온 학교 : 청덕초등학교 - 고려중학교(현 고려사대부중) 까지만 같이 나오고 고등학교에서 갈렸습니다.
그분은 위로 형님이 두분 계셨고 누님이 한분(두분일수도 있습니다. 세월이 있다보니 가물가물 합니다) 계셨는데
정확한건 한분의 누님은 저와 한살차이로 71년생 고려중-덕성여고였습니다. 성함은 김*운 입니다.
친구 아버님은 간쪽 병으로 중학생때 돌아가신것으로 기억하며
어머님은 친구 22~23살쯤 뇌출혈로 돌아가신것으로 기억합니다.
넉넉한 형편은 아니였지만 작은것도 나누고 형제같이 지냈습니다.
누나랑도 친했구요.
김종훈(저), 강흥업, 양성호 이렇게 자주 어울렸고 부모님이 다 맞벌이라 자연스럽게 방과후에는
맨날 붙어있다 싶이 했습니다.
여기서 양성호라는 친구는 정릉 시장쪽에서 신발가게를 했던거로 기억합니다.
군 제대후 27살~28살쯤 강흥업이란 친구는 프랜차이즈 돈까스 회사에 취직을 했던거로 알며
프랜차이즈 창업시 초기 세팅시 주방에서 돈까스 기술을 전수해주고 하던 일을 했던거로 기억합니다.
놀러갔을때 두배가 넘는 크기의 돈까스를 해주던 기억이 납니다.
너무 어려운 시기를 같이 보냈습니다.
그 친구가 싸움도 잘했지만 워낙 의리가 좋고 착해서
친구도 많았고 일진같은 애들이 괴롭히면 막하주곤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어려운 형편에 방황하고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고 했을때도
끝까지 기다려주고 이해해주고 했던 친구이기도 합니다.
나름 찾아보려 밴드도 가입하고 여기저기 끈 닿을만한곳에 연락도 해보곤 했지만
결국 찾지는 못했습니다. 이름이 흔치 않아서 SNS라도 할까 했지만 이마저도 하지 않는것 같습니다.
20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저의 오랜 친구이자 너무 그리운 강 흥 업을 아십니까?
친구가 너무 너무 그립고 보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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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칫 오해할수도 있습니다. 무슨 빚을 받으려 할까. 불량한 목적아닌가..
그래서 그분을 혹 아신다면 그분한테 먼저 물어봐 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보증한다고 해서 될일은 아닙니다만
그래서 꼭 그분 아시면 먼저 물어봐 주세요.
김종훈 이란 친구가 찾는다구요. 그래서 그분이 스스로 연락주셨음 합니다.
카톡아이디 : zoxoco0918
또는 보배 쪽지로 연락 주셨으면 합니다.
일본불매는 영원하다!
일본불매는 영원하다!
No No JAPAN!!!
청덕초,고려중이면 정릉4동에 거주하셨겠네요.ㅎㅎ
4동은 주로 산동네가 많았다고 하네요.
숭덕 북악 나온?
아 그 종훈이가 아니구나
축구 잘하던앤가
흥업이가 누구더라
가물가물하네
인남이랑 이렇게 청덕 친구들이였나? 4동?
영군이랑 같이 친한애 아니야?
고영군 고구마라고
기지배처럼 배시시 웃던 삐쩍 마른애가 흥업이
같은데
근데 3동 시장에서
우리 동창애가 신발가게한건 못봤는데
운동은 아주 잘했다 합니다. 인남이란분하고도 아는 사이였긴 하지만 인남이란 분은 길이 달라서..
아마 연은 없을거라 하네요 ^^
생긴건 까무잡잡한 피부에 눈부위가 실베스타 스텔론 같은 쌍꺼풀이 긴(?) 스타일이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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