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0조짜리 SK하이닉스 반도체 클러스터가 용인에 들어서기로 결정했다. 경북 구미는 이 120조짜리 클러스터를 따내려고 전력투구 했지만 사실 SK측에서는 구미는 처음부터 고려대상조차 아니엇다. 구미 외에도 청주, 천안, 이천등이 유치전에 가담했지만 결론은 용인으로 결정났다. 이유는 '서울과 가깝기 때문'. 용인보다 더 멀어지면 서울과의 거리가 감당할 수 없을만큼 멀어진다.
그럼 왜 서울과 가까워야 하는가? 인재가 서울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반도체같은 기술산업은 고급 인력을 얼마나 확보하는가가 경쟁력의 관건인데, 그런 인재는 서울에 몰려있다. 특히 SK하이닉스는는 지난 10년간 생산직 인력은 거의 변화가 없지만 연구직 인력은 몇배로 늘어났다. 반도체는 특히나 기술의 승자가 모든것을 독식하는 시장이다. 이 독식의 수익은 천문학적이라, 지방의 싼 땅값이나 각종 세금 혜택 따위는 고려대상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서울에서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 안쪽에 자리를 잡는 것이다.
이는 기존의 지역간 분업 모델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전에는 서울이 행정이나 경영등 고급 서비스를 제공하고, 지방은 대규모 제조업을 담당했다. 제조업은 땅값과 인건비도 싸고 혜택이 많은 지방으로 가서 대규모 고용을 창출했다. 이 균형이 이제 무너진 것이다. 반도체는 그나마 사정이 낫다. 어쨌든 공장이라 토지도 필요하고 해서 서울 중심부에는 당연히 못들어가니 수도권 외곽쯤이 한계다. 그러나 공장이 없는 IT기업이라면? 우리나라 IT기업의 거의 대부분이 서울의 강남권이나 판교에 위치해있다. 이는 한국만의 특이한 모습이 아니다. 거의 모든 반도체 제조공장은 대도시와 출퇴근 가능한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실리콘 밸리에는 그 살인적인 땅값을 지불하면서 까지 IT기업들이 모여있다.
그럼 왜 서울에 고급인력이 많은가? 거기에 일자리가 많으니까. 그럼 왜 일자리가 많은가? 고급인력이 많으니까. 이건 순환논증 같지만, 그렇지 않다. 서울은 이미 모든것을 더 빨아들이고 있는 도시여서 여기에 지식정보 계열 회사의 '구직 기회'가 더 많고, 이 많은 구직 기회는 다시 인력을 빨아들인다. 인력이 거기에 모여있으니 기업은 서울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는 말하자면 서울이 하나의 플랫폼 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구글이나, 네이버 카카오 같은 플랫폼. 플랫폼은 사람이 많이 모일수록 위력적이고 점차 모든것을 빨아들이면서 더욱 더 덩치를 불린다. 끝내는 그것을 쓰지 않고는 살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또한 지식 기반 산업의 특성은 '지식이란 상호작용을 할 수록 커지고 흘러넘치기 때문에, 사람이 모일수록 혁신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 모험적인 기업과 기술의 숙련도가 높은 시민이 모여서 살면 결과적으로 지식이 흘러넘치게 되고 이는 큰 시너지를낸다. 이렇게 혁신적인 기업이 탄생하면 그 경제효과가 도시를 부풀리고 그 부풀려진 도시는 다시 인재를 빨아들인다.
결국 지식기반 산업이 발달할수록 노동자도 기업도 서로 '모여있기를 원한다' 이렇게 몰려든 사람들이 혁신을 만들어내고 이 집중의 힘이 거대한 초과수익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전통적인 제조업에서도 이런 효과가 없지는 않았지만 21세기엔 이게 차원이 다른 위력이다. 사실 여기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일은 별로 없다. 정부는 아파트를 짓고 도로를 만들수는 있어도 사람을 지방에 가서 살게 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들은 아예 모든 지방을 그냥 포기하고 서울에 자원을 집중해서, 거기서 벌어들인 수익으로 나머지 지방을 먹여살리는게 차라리 낫다는 의견도 지속적으로 있었다. 그러나 전 세계의 여러 사례들을 보면 '집중되고 국제화된 대도시' VS '뒤쳐지고 소외된 나머지 지역'은 반드시 심각한 갈등을 만들어냈다. 소외된 지역은 대도시를 증오하고 대도시는 지방을 거추장스러워 하게 되면서 사회적 갈등이 높아지기 때문에 이는 적절한 대안이 아니다.
그나마 다른 대안이 있다면 제2의 서울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서울이 빨아들이는 힘을 버텨낼 수 있을 정도의 집중화된 대도시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적어도 그 자체로 플랫폼으로 기능할 수 있을 정도의 대도시가 하나는 더 있어야 수도권 집중화를 버텨낼 수 있다. 하지만 이 전략도 그 혜택을 받지 못한 나머지 지역을 적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에 쉽지 않은 결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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