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 종전 45년이 넘도록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전쟁포로와 그 가족들이다. 이들은 아직도 국방부를 상대로 국가의 본분을 저버린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고 있다. 더 나아가 스스로 진상규명에 뛰어들어 박정희 정권과 군부가 감춰온 베트남전 당시 한국인 포로의 진실을 한 꺼풀씩 벗겨내고 있다.
〈시사IN〉이 이 기사에서 처음으로 공개하는 두 가지 기밀 해제 문서들 또한 그들의 피눈물이 밴 산물이다. 두 문서는 베트남전 한국인 포로 문제를 둘러싸고 여전히 풀리지 않은 해묵은 숙제를 일깨워준다. 하나는 미국 국방부 내의 ‘전쟁포로 및 실종자 담당부서(DPMO)’가 작성한 베트남전 기간 한국인 포로와 실종자들에 관한 기록이다. 또 하나의 비밀문서는 박정희 정권 당시 국군보안사령부(현 군사안보지원사령부)가 베트남전 파병 한국군 포로 가족을 상대로 수십 년 동안 벌여온 ‘간첩 공작’이다.
1990년대 말에 기밀 해제된 미국 국방부의 포로 관련 문서에는 한국인 실종자와 포로 18명의 명단이 포함돼 있다. 미국 국방부는 명단에 들어간 인물들을 전쟁포로(PP), 포로수용소 사망자(KK), 전사자(BB), 송환자(RR), 협상에 따른 유해 송환자(NR), 무단이탈 및 탈영자(AA) 등으로 분류했다. 이 명단에서 한국인 18명은 전쟁포로(PP)나 포로수용소 사망자(KK)다. 무단이탈 탈영자(AA)로 분류된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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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말은 베트남 전쟁 종전 협상이 마무리되고 철군을 준비하던 시기였다. 박정희 정권은 그해 10월17일 유신헌법을 공포해 철권 독재체제를 구축하느라 온 나라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갔다. 베트남 전쟁 자체를 유신 선포의 명분으로 삼았다.
박정희 정권은 국군 포로나 민간인 실종자 문제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 1973년 봄 들어 베트남 전쟁 종전을 앞두고 포로 송환 문제가 국제 이슈로 부각되었으나, 한국 정부는 ‘한국군에 포로는 없다’는 공식 입장을 철저히 고수했다. 그해 3월15일 귀국한 이세호 주월 한국군사령관은 박 대통령을 만난 뒤 기자회견을 자청해 “월남전에서 한국군 포로는 단 1명도 발생하지 않았다”라고 발표했다.
이런 대국민 기만극은 오래갈 수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철군에 들어간 주월 한국군사령부와 박정희 정권을 포로 문제로 난처하게 한 쪽은 북베트남(월맹)이었다. 3월23일 사이공에 있던 주월 한국 대사가 “베트콩 측이 3월25일께 일방적으로 한국군 포로 1명을 석방한다고 미군에 통보했다”는 긴급 전문을 본국에 날렸다. 단 1명의 포로도 없다고 우기던 박 정권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부터 일주일간 국방부·외무부·주월 한국 대사관 사이에 숨 가쁘게 오간 ‘석방 포로맞이 비밀문서’들은 정부가 이 문제로 얼마나 혼비백산, 우왕좌왕했는지 드러내준다. 국방부에는 아예 포로 관련 자료가 없었다. 돌아올 포로에 대한 신원 파악은 현지 대사관 몫이었다. 처음에는 포로 이름이 인정철 준위라고 한국 측에 잘못 전해졌다. 포로를 사이공에서 맞을지 필리핀 클라크 공군기지에서 맞을지, 어떻게 귀국시킬지를 놓고 정부는 혼란에 빠졌다. 3월25일 포로의 신병을 인수한 뒤에야 송환 포로 신상이 본인 입으로 확인되었다. 그는 유종철 일병이었다.
그해 7월25일 주베트남 한국 대사관은 포로의 신분을 밝히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긴급 전문을 한국 정부에 보냈다. ‘맹호기갑연대 2대대 8중대 1소대 유종철 일병. 부산 영도가 고향인 유 일병은 1972년 4월19일 안케패스 작전 중 베트콩 기습으로 포로가 되었다.’
사망 처리됐던 호적에 ‘부활’이라 적혀
군부는 곤혹스러운 처지가 되었다. 이미 유 일병을 전사자로 처리해서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시킨 뒤였기 때문이다. 포로로 붙잡힌 유 일병을 전사자로 처리하고 1972년 5월11일 그에게 인헌무공훈장까지 추서했다. 유족에게는 전사 통지서와 함께 유품이라며 관물 24점을 전달했고, 장례비 100만원을 주어 장례도 치른 뒤였다. 그로부터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1973년 3월27일 밤 9시, 국방부가 ‘죽인’ 유종철 일병은 군인 신분을 감추기 위해 민간인 복장으로 김포공항에 입국해 가족 품에 안겼다. 사망 처리되었던 그의 호적에는 ‘부활’이라는 단어가 적혔다. 유종철 일병이 살아서 돌아온 뒤 국방부는 더 이상 한국군 포로는 없다고 주장했다. 주월 한국군사령부는 한술 더 떴다. 국군 실종자를 ‘찾을 필요가 없는 쓰레기’에 비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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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공군력의 도움으로 전쟁을 치르던 월맹군이,
한국군포로를 북한으로 넘겨서 북한으로 갔습니다..!!
북한 공군력의 도움으로 전쟁을 치르던 월맹군이,
한국군포로를 북한으로 넘겨서 북한으로 갔습니다..!!
인류 미래의 주적 차떼기 국짐당
박정희로 인해 베트남에서 고엽제를 살포맞고
귀국해 그 고통을 국가에 요청했으나 그 누구도 그들의 고통을 알아주지 않았다
빵삼이도
김대중 정부 들어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그 피해 대책을 세워 치유해 주었다\
웃기는건 자기들을 사지로 내몰고 내팽게친놈은 숭배하고 챙겨주고 위해준사람을 빨갱이로
욕하고 손가락질 한다는것...
한마디로 개 돼지 색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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