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 15일 광복직전,
재한일본인은 민간인 70만 명, 군인 20만 명이었다.
조선총독부는 8월 15일 항복 선언 이전, 민족지도자 중 가장 영향력 있던 여운형을 비밀리 접촉한다.
그리고 행정권을 넘겨 줄 테니 재한일본인의 본토 귀환을 도와달라는 요청을 한다.
여운형이 승락하지만, 미군의 통보가 조선총독부에 전달된다.
"1945년 9월 9일 38선 이남에 미군정이 세워질 때까지 조선총독부가 행정을 유지하라."
결국 1945년 8월 15일 광복 이후에도 조선총독부는 미군정에게 행정을 이양할 때까지 남아서 1945년 9월 29일 해산된다.
그리고 이 당시 일본 본토에서 조선총독부로 지시가 내려온다.
"본토 사정이 좋지 않으니, 모두 귀환하지 말고 일부는 남게 하라."
이로 인하여 1만여 명릐 재한일본인을 조선총독부 관료들이 신분 세탁을 한다.
총독부가 찍어낸 화폐 덕분에 막대한 부를 지니고 교육 수준도 높았던 이들에게 혼돈의 한반도는 또 다른 기회의 땅이었다.
미군정으로부터 적산 기업을 인수할 수도 있고, 교수가 될 수도 있으며, 사학을 매입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었다.
소설같은 이야기지만, 사실이다.
기록으로도 남아 있고,
호사카 유지 교수도 1만여 명리 본국 지시로 신분 세탁 후 남았다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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