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맘충,빠충이 많은이유가 나는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우리 어렸을때 진짜... 말도안되게 처맞았죠. 잘난 선생이랍시고 기분좋다고 패고, 기분 나쁘다고 패고, 월드컵 졌다고 패고, 이래서 패고 저래서 패고.. 진짜 남중,남고 지옥이였죠. 그세대들이 자라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었습니다. 우리 애도 옛날에 나처럼 학교에서 처맞는거 아닌지 걱정하는 마음이 엄청 큽니다. 그래서 맘충,빠충들이 많지 않나 싶내요. 100% 그렇다곤 볼수없지만 어느정도 영향은 있다고 봅니다.
내가 79년도 국민학교 5학년때 담임이셨던 김철수선생님.그 당시 우리에게 귀했던 까만 보온도시락을 항상 어깨에 메시고 출근하시던 모습이...점심시간때 묵은 냄새나는 김치만 싸오고하던 가난한 학생들틈에 끼어서 학생들이 싸온 그 김치만 드시고 정작 선생님께서 싸오신 맛있는 햄,쏘시지,달걀말이등은 학생들 양은도시락 보리밥위에 먹으라고 일일이 젓가락으로 올려주시던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선합니다. 선생님.넘 감사했습니다.
부산 안락동에 충렬초등학고( 그때는 국민학교였지 ) 내가 75년생이니
5학년때니깐 86년때가 5학년인가..
암튼 그때 집이랑 학교랑 멀었는데,,선생님이랑 작자가 나를 자전거에 태우고 우리까지 바래다 줬는데
그때 어머니께서 외출중이였는데 어머니 올때까지 집앞에서 기다리다 돈 받아가심.ㅋㅋㅋ 그때도 나이 좀 있는
남자 선생님이였는데..지금 생각하면 개새끼임..3학년때 여자 선생님도 밤에 오셔서 돈 받아가심...ㅎㅎ
참 개같은 선생님이 많은 시절이였음..
제가 국민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학급 저금이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매달 일정한 날에 학생들의 돈을 받아 은행에 아이들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어 저축의 중요성을 알려준다는 취지에 만들어졌죠.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한 상품이다 보니 이자가 기존 금리보다 아주 쬐끔 높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당시 장사를 하시던 모친께서 없는 살림에 목돈을 마련하고자 매달 1만원(당시 짜장면 2백원 하던 시대에요. ^^)을 꼬박꼬박 넣으라고 저에게 돈을 주셨습니다.
집에 돈을 쓸 일이 생겨서인지 정확한 기억이 나지 않지만 2학기 무렵 모친이 통장을 가지고 오라고 해서 선생님께 통장을 달라고 했습니다.
선생이 차일피일 미루다 나중에 어머니께 직접 전달해 줬습니다.
그날 어머니께 뒤지게 맞았습니다. 이유도 모르고요. 맞은 이유는 제 통장에 입급된 돈이 총 5천원이 안되었고 선생이 제가 돈을 중간에 썼을거라고 했답니다.
너무 억울해서 울고 항변했지만 당시에는 아이들보다 선생의 위상이 높았었죠. 다행히 매달 돈을 내면 입금증을 줬던게 있어서 그 입금증을 확인했고 어머니께서 학교에 찾아가면서 학교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우리 반에서만 저처럼 돈이 사라진 애들이 제법 있었죠. 전부 저만큼 못사는 애들이었고요.
그 돈 전부 선생이라는 놈이 술값으로 다 날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돌려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선생이 실수한거다. 그러니 학부모가 이해해 달라.'
뭐 돈봉투가 공공연하게 인정되던 시기니 애들 돈 훔쳐서 술 먹은게 무슨 대수였겠습니까
그외에 기억나는 게 당시 타지에서 일하시던 아버지께서 TV를 만드는 모 전자회사 다니셨습니다.
저금으로 그 사고를 내 놓고도 저한테 '너 아버지 전자회사 다니니 칼라 테레비 한 대 훔쳐서 달라'고 했던 사람입니다.
우리아이 초등때 박*수 30대 젊은선생이 실력부족으로 시험 답을 틀려놓고, 아이가 정답을 말하니 그때부터 1년내내 왕따를 시킨 선생. 적극적이던 성격이 소극적으로 바뀌었고, 틱도 생겼음. 아이가 상처 떠올리지않게하려고 입밖에도 안꺼냈는데 서른이 된 지금 다 기억하고 말하더라~그때만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 찌질하고 못난 남자 선생놈!!
저도 저런 걸 다 겪었어요. 초 2때인가 뺨 맞고, 단체 기합에.. 가정조사 한다며 부모님 이혼 한 사람 손 들라고하고. 너는 아빠가 없어? 재차 묻고. 가정조사서, 성적표 애들이 나누어주고 걷게 하고..
그래서 교사가 되고나서, 절대 저런 거 안합니다.
감정적으로 애들 대하지 않고, 시험지(성적표)는 귀찮지만 꼭 제가 직접 전달하고, 가정조사서 같은 건 또 귀찮지만 서류봉투에 일일히 다 담아줍니다.
못된 선생들이..그땐 너무 많았죠.
오래전 선배들이 저지른 업보를 왜 이 시대 교사들이 받아내야 하는지 항상 의문이긴 합니다.
그들은 지금 교장, 장학관이 되어 사랑으로 모든 아이들을 특별하게 대우하라고 합니다. 학생들의 결과가 아닌 과정과 노력을 평가하라고 합니다. 교사의 희생을 입에 담고 삽니다. 엿 같습니다.
집에서 스트레스 학교에서 푸는 쓰레기 같은 새끼들 많았지
알고 떠들어라
선생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 자체가 워낙 순수 했고 안가면 당시에 그시간에 같이 놀 친구가 없어서가 그랬던겁니다.
그냥 뒤지게 패는거
패도 뒷탈없으니까
친구랑 나랑 절도사건에 걸림(자세히 얘기하면 말이 길어지니 둘만 걸린걸로...)
선생이 교무실로 부름. 무릎 꿇으래.. 꿇었더니 구둣발로 지근지근 밟으심...(내가 잘못했으니 이정도는 맞는거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친구는 손바닥으로 두어대 때리고 끝!!!(그 친구는 엄마가 학교에 찾아오곤 해서 그런지...)
결국 나만 엄마 모시고 피해자분 찾아가서 싹싹 빌어 해결함...(그때도 그친구는 집에 얘기도 안했다는데...)
어찌됐건 세월이 흘러흘러 30대가 되어갈때쯤 그 학교 선생한테서 전화가옴(내 번호는 우리집에 전화해서 물어보고..)
대뜸 한다는 소리가 자기동생이 이번에 구의원인가 나오는데 한표 뽑아달라고~~ㅋㅋㅋ
연락하는 친구들 있으면 연락해서 얘기좀 해달라고~~ㅋㅋㅋ
욕을 퍼부을려다가 참았으나 엄마한테 이 이야기를 하니 그 양반 안되겠다면 난리를 치심.
더 중요한건 시체가 나와도 빨간당이 된다는 우리구에서 낙선ㅋㅋㅋㅋ
선생질하던 쓉쒱이들을 찾아낸다.
자식새끼들 모조리 징역때리고 집꾸적 풍비박산.
이런거 내용 영화면 잼있을듯.
야자시간에 재채기 크게 한다고 싸대기 날리던 강동출 선생님 잘 계십니까??
강한자만이 살아남았다는 80ㅡ90년대를 학창시절로 보내고나니 선생같지도 않은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어요
나도 늙어가는 판국에
그들이나 제발 유병으로 장수했음 좋겠습니다
지금 저렇게 하면 애들 다 맨붕오쥬 ㅋㅋ
집에서 왕처럼 키워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5학년때니깐 86년때가 5학년인가..
암튼 그때 집이랑 학교랑 멀었는데,,선생님이랑 작자가 나를 자전거에 태우고 우리까지 바래다 줬는데
그때 어머니께서 외출중이였는데 어머니 올때까지 집앞에서 기다리다 돈 받아가심.ㅋㅋㅋ 그때도 나이 좀 있는
남자 선생님이였는데..지금 생각하면 개새끼임..3학년때 여자 선생님도 밤에 오셔서 돈 받아가심...ㅎㅎ
참 개같은 선생님이 많은 시절이였음..
반대편 선생이 튀어나와서 끌었다고 빰을 때리는데 완전 개억울 옮기고 싶어서 옮긴 것도 아닌데....ㅡㅡ
지금 그 선생 만나면 죽이고 싶다.
학교에 이야기 했더니,
초등학교 6학년때 같은 반으로 만들어 줘 2년을 같은 놈에게 따돌림 당하게 만들었던 쌍년!!
제발 유병장수해라~~!!
매달 일정한 날에 학생들의 돈을 받아 은행에 아이들 이름으로 통장을 만들어 저축의 중요성을 알려준다는 취지에 만들어졌죠.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특별한 상품이다 보니 이자가 기존 금리보다 아주 쬐끔 높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 당시 장사를 하시던 모친께서 없는 살림에 목돈을 마련하고자 매달 1만원(당시 짜장면 2백원 하던 시대에요. ^^)을 꼬박꼬박 넣으라고 저에게 돈을 주셨습니다.
집에 돈을 쓸 일이 생겨서인지 정확한 기억이 나지 않지만 2학기 무렵 모친이 통장을 가지고 오라고 해서 선생님께 통장을 달라고 했습니다.
선생이 차일피일 미루다 나중에 어머니께 직접 전달해 줬습니다.
그날 어머니께 뒤지게 맞았습니다. 이유도 모르고요. 맞은 이유는 제 통장에 입급된 돈이 총 5천원이 안되었고 선생이 제가 돈을 중간에 썼을거라고 했답니다.
너무 억울해서 울고 항변했지만 당시에는 아이들보다 선생의 위상이 높았었죠. 다행히 매달 돈을 내면 입금증을 줬던게 있어서 그 입금증을 확인했고 어머니께서 학교에 찾아가면서 학교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우리 반에서만 저처럼 돈이 사라진 애들이 제법 있었죠. 전부 저만큼 못사는 애들이었고요.
그 돈 전부 선생이라는 놈이 술값으로 다 날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돌려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선생이 실수한거다. 그러니 학부모가 이해해 달라.'
뭐 돈봉투가 공공연하게 인정되던 시기니 애들 돈 훔쳐서 술 먹은게 무슨 대수였겠습니까
그외에 기억나는 게 당시 타지에서 일하시던 아버지께서 TV를 만드는 모 전자회사 다니셨습니다.
저금으로 그 사고를 내 놓고도 저한테 '너 아버지 전자회사 다니니 칼라 테레비 한 대 훔쳐서 달라'고 했던 사람입니다.
지금은 뭐하고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즘 뒤진것들도 있을테고 교장이나 퇴임했을수도 있고...하여간 그런 잡것들은 오래도 살아요..
돈 낸 놈 대신 덮어쓰고 쳐 맞아본 적도 없고 ㅋㅋ
지금쯤 70넘었을텐데... 인생 말년에 조심하십시오!
신체접촉도 많이 하고 지금 같으면 성범죄 처벌을 받을건데..
아이들 상대로 참 못할짓 많이 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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