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엄청 잘하는구나!"
수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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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꿍이었으면서도 하루종일 부끄러움에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는데
옷은 분홍색 원피스로 바뀌었지만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자그마한 체구와 커다란 가방.
그리고 가녀린 목소리.
분명 먼저 말을 걸어오는 수연이였지만
말문이 막혀 안녕이라는 말도 잊은채
엉뚱한 얘기로 답을 했다.
"학교는 이쪽이 아니잖아."
"응, 리코더 노래 소리 너무 좋아서
누군가하고 와봤더니 내 짝꿍이네."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아까부터 두근대던 심장은 곧 터질듯이
나에게 무언의 압력을 가했다.
바보야 뭐라고 말좀 해.
침묵이 흘렀다.
2년 넘도록 매일같이 아침이면
50명 넘게 때로는 옆반 아이들까지 가세해
70명이 넘는 군중 아닌 군중앞에서
잘도 부끄럼 없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왔던
나였는데...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냉큼 들어가고 싶던 찰나
머릿속을 떠돌던 수많은 질문과 인사대신
또 한번 바보같은 말문이 열리고 말았다.
"나도 전주 가봤어. 동물원."
쯧쯧,
서울 사람이었으면 서울 가봤다 할테고
부산 사람이었으면 부산 가봤다 할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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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여러분 이제 잠자리에 들 시간입니다.'
어김없이 9시40분이 되면
헤드라인 뉴스가 끝나고 스포츠소식 사이에
흘러나오던 시그널.
동시에 내방으로 뛰어들어가
밤새도록 수연이를 떠올리며
공책에 수백번 연습했던 첫인사.
다 어디로 가고...
수연이가 입을 열기도 전에
나는 안개속으로 내달렸다.
희미하게 불리는 나의 이름이
내 뒷덜미를 잡아채는 듯 했지만
아랑곳 않고 더 빨리 뛰었다.
안개가 나를 숨겨주리라.
바보같은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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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꿍이라는 건 아이들의 인간관계에서
참 편할 때가 많다.
물론 견원지간의 원수가 되어버릴 부작용도
있긴 했지만
순수했던 그 시절
쳐다보지 못할 나무에도
오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짖궂은 장난과 바보같은 처세에도
서먹했던 사이가 눈 녹듯 풀어질 수 있으니.
우리가 그랬다.
처음에는 밥도 따로먹고
(물론 점심시간만 되면 내가 먼저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지만)
책상 가운데에 파여진 38선으로
수업시간에 넘어가버린
지우개 하나 제대로 가져오지 못하더니
수연이의 끊임없는 호기심이 가져온
질문 공세와
지금처럼 학원이 없던 시절
전학오기 전 배웠던 두 학교의 진도가 서로 달라
선생님의 배려였던 방과 후 학습에
참여를 희망하는 사람 손들어란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천장을 뚫을 듯
손을 뻗어 올리며
"저요!"를 외친 나로 인해
우린...
어느새 친구가 되려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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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부터 나는 유독 오락에 관심이 많았다.
국민학교 입학직후부터
하교길에 문방구 한켠의
10원짜리 오락기에 넋을 잃더니
학년이 오를수록
불사조나 탱크, 요술나무 같은
오락에 미쳐
학교가 끝나도 집에 가기보다는
오락실로 발길이 옮겨지기 일쑤였고
달래도 보고 화를 내보아도 나아지긴커녕
허구한 날 도시락과 우산을
오락실에서 잊어먹기 밥먹듯 하는 나를
부모님께선 결국 3학년이 되자 선물로
컴퓨터를 사주심으로써
오락실 출입 자체를 막고자 하셨다.
apple 컴퓨터...
후에 apple II, apple IIe로 업그레이드했고
msx가 대중화되기 전까지
최고의 재미를 보장하던
그 시대의 만능 게임기 아니었던가.
크로바시간이라 불리던
매주 수요일 오후 클럽활동 시간에
전교생 3500명에 3대 뿐이던
컴퓨터부에 가입하고 활동할 수 있는
특권 또한 누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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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수요일 클럽활동 시간...
한참 베이직 언어로
프로그래밍(이래봤자 goto나 치고있)을
하고 있는데
수연이가 빼꼼 들어온다.
"나 아직 아무데도 가입 안했는데
컴퓨터부에 들까?"
"컴퓨터는 있어?"
"아니."
"그럼 숙제는 어떻게 할건데?"
"음...남아서 해도 되고,
니네집에 가서... 같이 하면 안되겠지?"
왜 안되겠니
문열려 있어
아주 그냥 너 살아도 돼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여자애 한번도 집에 안데려 왔어.
엄마가 놀라지 않으실까?"
특유의 호기심이 또 발동한다.
집은 어딘데
놀이터 근처니
아빠는 뭐하셔
엄마는 예뻐
동생은 있냐는둥
일일히 대답하기 귀찮은 척
난 이렇게 말했다.
"그냥 주말에 한 번 놀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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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주말
수연이가 집에 왔다!
아빠는 출장 중,
엄마는 여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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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에 계속...
안보신 분을 위해 1편 수정하여 링크^^ http://blog.naver.com/evo001/40190376215
추천 한 방 주시면 더욱 열심히 계속 달리겠습니다.
사진출처 giant bomb
자게부심!!
추천 감사 꾸벅
자게에 계속 올려주세요.
사람마다 시각이 다른 듯...
전 님의 글이 자게에 더 어울린다는 느낌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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