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주말
수연이가 집에 왔다!
아빠는 출장 중,
엄마는 여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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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약속한 12시에 5분 늦은 시간.
이미 30분 전부터
현관에서 놀이터로 이어지는
큰 길이 훤히 보이는 거실 창문으로
수십번을 기웃거리고 있었기에
모퉁이를 돌아 길을 걸으며
길가에 핀 꽃을 바라보고,
대문 앞에 도착해
손목시계를 힐끔 쳐다보다
초인종을 누르기 전
손거울을 꺼내 머리카락 정리하는 것까지
다 지켜보고 있던 터였다.
끼이익
문이 열리고...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수연이 미소를 한껏 머금은 채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잊지못할 첫 만남의 순간부터
미소가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미소는 오직 나만을 위한 것임을
알고있기에 더더욱 예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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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섬진강에서 일하셨다.
커다란 바아지에 크레인을 싣고 다니며
하루종일 집게처럼 생긴 바가지로
바닥을 긁어서 모래를 채취하셨다.
강물을 함께 머금고 물 위로
올려지는 바가지는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모래를
바아지 위에 쌓아 놓았고
물을 빼는 작업을 하는 동안
산더미 같은 모래더미는
나에게 보물창고나 다름없었다.
예쁜 조개 껍데기,
탁구공처럼 동그란 조약돌,
그리고 무엇보다 날 흥분시킨 건
금빛 모래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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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TV에선 주말마다
토요명화
주말의명화
명화극장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했는데
오후10시, 11시라는
늦은 시간대에도 불구하고
볼거리가 부족했던 시절
지금처럼 딱히 연령제한도 없던터라
의외로 많은 어린이들이 고정팬이어서
한 주간 학교의 단골 얘깃거리였고
나에게는 오전 이야기 소재로서
변형 가능한 무한한 재료였다.
토요명화는
KBS2TV에서
무난한 액션이나 드라마를
주로 방영했었고
MBC 주말의명화는
KBS 프로그램보다
신작 편성이 많은데다
특히 키스신이 나오는 영화가
유난히 많았던 걸로 기억된다.
어린 마음에
신문 방송란을 정독하며
애정영화라도 있을라치면
왜 그리도 흥분되었던지...
아무튼,
일요일 늦은 오후면
서부영화가 주를 이루던
명화극장을 놓치지 않고 시청했었는데
대부분 가난한 우리 주인공들이
강가에서 채 비스무리한 도구를 사용하여
하루종일 쭈그리고 앉아 강물을 걸러내면
금가루, 금조각들이 세숫대야 같은 그릇에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고
이것을 주머니에 담아 모아
시장에서 저울로 달아 팔면
새 옷, 말, 마차 한대가 뚝딱 나오니
그 광경이 참으로 신기하여서
세숫대야보다 큰, 훨씬 큰
바아지의 모래더미는
나에게 황금광시대를 체험하는
행복한 경험이었고 큰 희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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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있으면 보여줘봐."
"보물?"
"응, 니가 제일 아끼는 거."
난 주저없이
섬진강의 금모래를 가득 담은
슈퍼카미트 상자를
수연이 앞에 내밀었다.
한 알이라도 샐까봐
스카치테이프로 이중삼중 덧씌워서
맨들맨들해진 상자를
한참 쳐다보고 있더니
"이게 컴퓨터보다 더 보물이야?"
바보...
비싼 것일수록 허술한 용기에
보관하는 것이 진리임을
왜 모르고 있나.
혹시 도둑이라도 들면 어쩌려고.
속으로 한 껏 비웃고
나는 자랑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수연의 동공이 커지기 시작했다.
"우와!"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여자사람 앞에서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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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상자 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
경이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수연의 하얀 목덜미가
시선에 들어왔다.
지금껏 까만 피부로만 생각했는데
귓볼까지 이어지는 하얀 살결은
눈부시고 눈부시고 눈이 부셨다.
솜털까지 사랑스럽고 탐스러운...
머릿속은 온통
MBC 주말의명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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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에 계속...
사진출처 하동군 홈페이지
죄송합니다. 집에가서 복구할께요
전 안보이는데 어떻게 보셨죠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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