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이 왜 그렇게 빨개?"
"그.. 그게."
?
"어... 아... 아빠 덕분에 이... 이거 다 모았거든.
잠깐 아빠 생각하고 있었...어."
참 못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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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됐건...
아빠 얘기가 나온 김에,
나는 수연에게 그 동안 아빠를 따라다니며
겪었던 신기하고 재밌는 얘기를
침이 마르도록 자랑했다.
2시간동안 오토바이 기름탱크에 앉아서
아랫도리에 감각을 잊은 일
직원들 월급이 들어있는 가방이
얼마나 무거웠던지 어깨끈이 떨어진 일
꽃상여가 안개 자욱한 허공을 날아가던 일...
내가 경험한 일외에도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얘기를
적절하게 편집해
이야기해 주었더니
수연은 호흡 곤란 지경을
몇차례 왕복하고는
배가 아프다며
그만 좀 웃기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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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빠 일하는 곳
한 번도 안가봤는데..."
부러운 듯 날 바라보았다.
"출장이 많아서 자주 못 봐.
이번 주도 출장이시잖아."
수연도
주말인데 아빠가 출근해서 속상하다 말했다.
"그래? 그럼 가보자.
돌산대교 여기서 가깝거든."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전화벨이 울렸다.
따르릉~
슬기였다.
놀이터로 지금 나오라는 전화였다.
맞다. 약속이 있었지...
어쩐다.
"슬기야, 바다도 볼겸 돌산대교 구경갈래?
놀이터에 아무도 없더라. "
약속을 안지키는 아이가 되기 싫었기에
난 창 밖을 내다보지도 않고
우리의 여정에 슬기를 동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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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가을 무렵,
엄마는 집에서 근신 중이던
나에게 심부름을 시키셨다.
엄마가 화가 난 이유는
저번 주 새로 사주신
코스모스 3단 보온도시락을
채 일주일도 되기 전에
아드님께서 어딘가에서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는데,
엄마의 심부름이란
동네 식료품점에서
콩나물 200원 어치를 사가지고 오는
난이도 하의 평범한 배달이었다.
가게 이모의 한 마디만 없었으면...
"왔어? 콩나물이 지금 떨이여...
조금 모자라니까 100원에 다 가져가고
엄마한테는 꼭 많이 담았다고 전해라."
...
100원이 남았다!
...
긴 생각 할 거 있겠는가.
겔러그 한 판 하고,
사과 삐에로 한 판 하자.
갤러그는 오래 걸리니까
딕덕을 할까?
나는 콩나물 봉지를 들고
집과는 반대 방향이던
길 건너 오락실까지
전력질주를 하고 있었다.
끼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쿵!
순간,
반대편에서 순찰을 돌던 빽차 한 대가
무단횡단을 하다 오토바이에 치여
튕겨져 나간 나를 발견한 건 거의 동시였고
난생 처음 빽차에 타본 경험이었지만
이미 기절을 했던 나는
아무런 기억도 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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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안의 병원 신세 후
슬기와 나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공책에 꼬박 꼬박
로빈슨크루소 날짜 세듯
병문안 왔던 친구들 이름에
방문 횟수를 표시해 두었는데
압도적인 표차로
슬기가 출석도장을 찍었던 것이다.
퇴원 후 슬기에게
더욱 잘해주기 시작 한 건
병문안에 대한 고마움과 보답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추억을 공유하는
메이트가 되어 가고 있었다.
3년을 함께 한
동창이자 놀이터 친구...
1학년 때 한 반이 되어
운동회 새신랑 새각시 춤을 추었고
2학년에도 한 반이 되어
형언니들의 매스게임 들러리를
커플로 치루었으며,
3학년까지 내리 한 반이 되어
짝꿍까지!
비록 지금은 수연에게 밀려
놀이터 친구로 만족해야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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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여정에 합류하게 된 슬기와
우리는 수연의 아빠를 만나기 위해
돌산대교 공사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슬기에게는
수연이와 집앞에서 방금 우연히 만나
너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매너멘트를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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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에 계속...
사진출처 두산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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