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국립 서울 현충원입니다.
정문을 지나 분수대가 있고 넓은 잔디밭(겨레얼마당)을 지나면
정치인들이나 대통령이 꼭 통과하여 헌화를 하거나 묵념을 올리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현충탑입니다. 현충탑의 내부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으신 것 같아 소개드립니다.
어릴 때 저는 부산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곳을 모르고 있었고
아버지께서 명절 전이나 현충일 전에 서울을 왜 가시는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90년대 중순이 되면서 저두 서울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아버지가 그냥 따라오라고만 하셔서 가서 알게 된
사실은 할아버지가 이곳에 계시다고 그리고 앞으로 내가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이곳에 오지 못하더라도 아들인 네가 대를
이어서 찾아오라고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위 글은 박정희 대통령이 쓴 글이라고 뒷면에 적혀 있습니다.>
솔직히 아버지의 말을 듣고 처음 찾아온 날에는 우리 집안에 그것도 할아버지가 이곳에 있다는게 신기하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공부하고 알바하고 그러느라 가까이 있으면서도 찾아가질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저도 군대를 가게 되었고 군 생활 말에 국방부 유해발굴단이 생긴다고 혹시 가족 중에 6.25 전사자가 있으면
DNA 체취를 하겠다고 상부에서 공문이 내려왔습니다. 저도 그 때서야 할아버지 생각이 나서 보고를 했고 대대장이 엄청
큰 실적을 올린 것처럼 좋아하더군요. 위로 휴가(2박3일)도 주더군요.(말년 휴가에 붙여서 나감) ㅋㅋ
<현충탑 안으로 들어오면 바로 보이는 곳>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처음으로 찾아간 곳이 현충탑이었습니다. 현충원이 새롭게 보이더군요.
그리고 할아버지의 발자취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저희 집안은 할아버지만 7분이 계셨는데 장남이셨던 분이 바로 저희 할아버시셨고 1950년 6월 25일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시고 계셨습니다. 7월초에 부산으로 내려오셨고 부모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군에 입대
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1951년 5월 9일 26살의 나이로 강원도 고성에서 전사하셨습니다.
슬하에 3남매를 두셨고 할머니와 영원한 이별을 하신거죠.
할머니는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고 사진이 있으면 계속 생각이 나니까 모두 불태워 버리셨고 마지막 남은 한장의 사진은
돌아가실 때 꼭 함께 태워달라고 하시면서 남겨두셨습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 마지막 사진을 함께 넣어드렸습니다.
<약 10만위의 위패가 이곳에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군번이 K로 시작됩니다. 카투사의 군번이 K로 시작된다는 것을 몇년 전에 우연히 알게 되었고 유해 발굴단에
연락해 보니 미군의 기록과도 함께 확인을 해야한다고 하였습니다.(그걸 이제야 시작하면 어쩌누...)
전사하신 위치도 다를 수 있다고 하네요...
<할아버지 위패가 있는 곳. 위패에 이름만 남아 있는 전사자들>
2015년이 되었을 때 아버지께서 DNA도 변하는거 아니냐고(?) 다시 하러 가자고 현충일에 다시 DNA를 제공했습니다.
2000년에 DNA 제공을 처음 했었으니 이제 22년이 되어 가는데 아직 할아버지는 돌아오실 생각이 없으신지 유해 발굴
소식은 들리지 않습니다. 유가족에게는 매년 연말이 되면 유해발굴단에서 작은 책자를 보내옵니다.
서두에는 항상 올해도 유해를 유가족분들께 돌려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고 시작합니다. 그 책자를 받는다는 것은 올해도
유해 발굴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라 아버지는 그 책을 보실 때 마다 올해도 못 찾았구나 하시며 안타까워 하십니다.
이제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언제 찾을 수 있을지... 하시며 언젠가 꼭 찾게되면 할머니 옆에 같이 모셔달라고 하십니다.
작년에 문재인 대통령님께서 미국에서 유해를 가지고 오실 때 내심 아버지는 기대를 많이 하셨던 것 같습니다.
소식을 듣자 마자 TV 생방송을 보셔야 한다고 앉으셔서 끝까지 보시고는 많이 우셨었습니다.
이제 정말 더 늦기 전에 빨리 돌아오셨으면 하는 바램으로 글을 적었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의 큰아버지는 전쟁때 국민방위군에 징집되어 훈련중(아니면 이동중)에 돌아가셨다고 아버지가 말씀하시더라구요...
아버지 연세가 80을 훌쩍 넘었는데 혹시나 하는마음으로 유해발굴단에 아버지의 DNA등록을 요청했던적이 있습니다.
답변은 군복무기록(아니면 징집기록)이 없으면 유가족 DNA등록도 불가하다고 했구요.
그래서 기록을 찾아보고자 국방부에 민원을 넣어봤는데 기록이 없다고하고요...
아버지 연세도 있어서 살아계실때 큰아버지 유해라도 찾아보고 싶었는데... 안타까운 마음에 댓글남깁니다...
아무쪼록 할아버지의 유해가 늦지않게 발견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저는 생각난김에 유해발굴단에 다시한번 전화나 해봐야겠습니다.ㅎ
저의 큰아버지는 전쟁때 국민방위군에 징집되어 훈련중(아니면 이동중)에 돌아가셨다고 아버지가 말씀하시더라구요...
아버지 연세가 80을 훌쩍 넘었는데 혹시나 하는마음으로 유해발굴단에 아버지의 DNA등록을 요청했던적이 있습니다.
답변은 군복무기록(아니면 징집기록)이 없으면 유가족 DNA등록도 불가하다고 했구요.
그래서 기록을 찾아보고자 국방부에 민원을 넣어봤는데 기록이 없다고하고요...
아버지 연세도 있어서 살아계실때 큰아버지 유해라도 찾아보고 싶었는데... 안타까운 마음에 댓글남깁니다...
아무쪼록 할아버지의 유해가 늦지않게 발견되기를 기원하겠습니다.
저는 생각난김에 유해발굴단에 다시한번 전화나 해봐야겠습니다.ㅎ
제 생각엔 국립묘지 이 예전 이름이 더 익숙 합니다. 물론 많이 배우시고 경험이 많으신 분들이
이름을 국립묘지 에서 현충원 으로 바꾸셨겠지만요. 여러분들 생각은 어떠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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