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상
도봉경찰서는 지난 17 일 오후 19 시 19 분께 도봉구 방학 3 동의 한 가정집에 침입해 A(30) 씨와 그의 남편 B(34) 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로 최 모 (35) 씨를 긴급체포했다 . 최 씨는 가택을 무단 침입하여 홀로 집에 있던 A 씨를 안방에서 살해하였으며 곧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 B 씨마저 흉기로 5 차례 이상 찔러 무참히 살해했다 .
평소보다 퇴근이 조금 이른 날의 저녁이었다 . 오늘 마지막 일정이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이었고 또 사무실에 들르기엔 조금 모호한 시간이라 현장에서 바로 퇴근했더니 대략 한 시간가량은 일찍 집에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 나는 반갑게 맞이해줄 아내를 기대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초인종을 눌렀지만 , 슈퍼라도 간 건지 안에선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 다행히 키는 가방 안에 항상 가지고 다녔기 때문에 주섬주섬 꺼내서 열쇠 구멍에 밀어 넣고 키를 돌렸다 . 잠금장치가 묵직하게 돌아가는 느낌이 손끝에 전해졌다 . 황당한 건 그런데도 문은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 몇 차례 문고리를 잡아당겨도 현관문은 꿈쩍을 하지 않았다 . 의아한 마음으로 꽂혀있던 열쇠를 반대 방향으로 돌렸더니 그제야 철옹성 같았던 문이 당겨졌다 .
‘ 뭐야 ? 문도 안 잠그고 나간 거야 ?’
아내의 꼼꼼한 성격치곤 상당히 드문 실수였다 . 하지만 나는 별다른 걱정은 하지 않았다 . 그보다 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묘한 냄새에 신경이 더 쓰였다 . 뭔가 비릿하고 시큼한 , 아니 시큼하다는 표현은 잘못된 것 같다 . 하지만 익숙하지도 않고 달갑지도 않은 냄새인 것은 분명했다 . 오늘은 대체 무슨 요리를 하려는 것일까 .
아내는 연애 시절부터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새로운 것에 대한 경험을 무척이나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 그런 그녀가 나와 결혼을 해서 매일 같은 일상을 반복하는 주부가 되고 나니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을 요리로 풀기 시작했다 .
아내의 요리는 이름부터 화려했다 . 삼겹 깍둑 부대찌개 같은 건 그나마 평범한 축에 속했다 . 나는 그저께 먹었던 까슈 어쩌고 하는 요리는 여러 번 이름을 들었음에도 여전히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 아내의 요리는 수시로 국경을 넘나들었기 때문에 요리의 이름과 맛에 익숙해지기가 쉽지 않았다 .
나는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마시며 주방 쪽으로 향했다 . 요리가 완성되기 전에 이 비릿한 향의 정체를 먼저 확인하고 싶었다 . 하지만 좁은 주방 그 어디에도 요리 재료로 의심될 만한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
괜히 기분이 이상해졌다 . 나는 거실의 창을 활짝 열어젖힌 뒤 상의를 벗어 소파에 내팽개치고 그 옆에 털썩 앉아 TV 를 켰다 . 아내를 기다리며 몇 차례 채널을 돌려봤지만 , 흥미 있는 방송은 없었다 . 멍하니 20 분 정도는 앉아있었던 것 같은데 아내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 나는 팔을 뻗어 던져놨던 상의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찾아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 수 초 후 , 익숙한 벨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 저 소리는 지금 내 귀가 아닌 핸드폰을 들고 나간 아내의 귀에 들려야 할 소리였다 . 양미간을 좁히며 집중하니 소리의 근원지는 안방이란 걸 알 수 있었다 . 정말 이상했다 . 문도 안 잠그고 나간 것도 이상한데 핸드폰마저 안방에 두고 갔다니 . 평소의 아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딱히 아내가 두고 간 핸드폰을 찾으러 갈 생각은 아니었지만 나는 별생각 없이 안방 문을 열었다 . 아직 다 열리지 않은 문틈 사이로 방안의 비릿한 공기가 코끝으로 확 밀려들어 왔다 . 구역질이 날 만큼 역겨운 냄새였다 . 나는 순간 멈칫했다 . 조금 전까진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드는 정도였다면 이젠 확신을 넘어선 불안감이 온몸을 엄습해왔다 . 그리고 잠시 후 완전히 열린 문 뒤로는 그 불안감보다 더 끔찍하고 소름 돋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
이 집으로 이사 오면서 가장 공들여 꾸몄던 곳이 바로 안방이었다 . 우리 부부는 하얀색 실크벽지를 고르면서 가구와 침구류 , 커튼까지도 온통 하얀색으로 꾸몄다 . 우리만의 화이트하우스였다 . 그랬던 그곳이 붉은색 페인트라도 쏟아부은 듯 온통 새빨갛게 오염돼 있었다 . 나는 공포감에 얼어붙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 채 기괴스럽게 변한 방 안의 풍경을 경악스럽게 바라보았다 .
“ 여보 !!”
굳었던 몸이 움직여진 건 바닥에 쓰러져있는 아내가 눈에 들어오고 나서였다 . 나는 비명에 가깝게 아내를 부르며 아내의 곁으로 달려갔다 . 아내는 피의 웅덩이에 잠겨 붉게 물들었다 .
“ 여보 ! 정신 좀 차려봐 . 여보 !!”
세차게 흔들어 아내를 깨웠지만 , 아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 인중에 손가락을 대봐도 호흡이 느껴지질 않았다 . 나는 밀려오는 무서운 상상을 애써 떨쳐내며 아내의 입에 공기를 불어 넣었다 . 어디선가 배운 흉부 압박도 시도해봤다 . 아내의 가슴 어귀를 강하게 누르는 순간 아내에게서 다량의 피가 뿜어져 내 얼굴로 튀어 올랐다 .
나는 절규하듯 울부짖었지만 잠시 후엔 그나마도 할 수가 없었다 . 어디선가 차갑고 날카로운 것이 내 옆구리에 날아와 박혔다 . ‘ 헉 ’ 소리를 내지르기도 전에 쑤욱 뽑힌 그것은 내 배를 향해 다시 한번 찔러 들어왔다 . 그 뒤로도 몇 번이나 더 같은 행위가 반복되었다 . 온몸이 불에 덴 듯 화끈거렸다 . 나는 더는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 등 뒤에서 낯선 목소리의 욕설이 들려왔다 .
“ 개 같은 놈이 감히 내 여자를 건드리고도 살 수 있을 것 같아 ? 제 서방도 몰라보는 년이나 쓰레기 같은 네 놈이나 다 뒈져야 해 . 다 뒈져 없어져야 한다고 !”
나는 젖 먹던 힘을 다해 꿈틀거리며 몸을 뒤집었다 . 점차 흐려지는 눈앞엔 피 묻은 모자를 눌러쓴 한 사내가 보였다 . 사내는 나를 향해 뭐라고 계속 말하는 듯이 보였지만 이상하게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 흡사 음소거 버튼을 눌러놓은 TV 화면 같았다 . 눈앞의 사내가 아내의 전남편이라는 걸 간신히 떠올렸을 때쯤엔 소리 없는 화면마저 꺼지고 말았다 .
온몸에서 느껴지던 강력한 통증이 서서히 옅어지고 있다 . 통증이 가시는 건 다행이었지만 저 아픔이 완전히 사라지면 나도 사라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나는 마지막 힘을 짜내 아내의 손을 맞잡았다 .
*
눈을 떴다 . 축축하게 젖은 침대가 끈적였다 . 멍한 머릿속에 무언가 떠오르려 했지만 지금 당장은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 수 분이 지났지만 , 팔다리는 눈을 떴을 때 그 자리 그대로 놓여있다 . 나는 그것들을 움직일 힘이 없다 . 어쩜 움직이려고 생각할 힘조차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 내 몸에 붙어있지만 내 것 같지가 않았다 .
다시 눈을 감았다 . 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 나는 다시 눈을 떴다가 또 감는 것을 반복했다 . 힘들이지 않고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게 두 눈뿐이었다 . 눈앞엔 천장이 있었지만 , 무늬도 색깔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는 모른다 . 천장 벽지가 격자무늬로 되어있다는 걸 인지할 때쯤 목구멍이 타들어 갈 정도의 갈증이 갑작스럽게 밀려왔다 . 지금 당장 물을 마시지 못하면 온몸이 말라 비틀어져 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 나는 힘겹게 몸을 굴려 침대 밑으로 떨어뜨린 다음 기다시피 하여 냉장고로 향했다 . 마침내 손에 쥔 물병의 뚜껑을 벌벌 떨리는 손으로 열고는 단숨에 목구멍으로 모두 털어 넣었다 . 그 순간 전기에라도 감전된 듯한 싸한 느낌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 내려가며 모공의 털들을 바짝 일으켜 세웠다 . 나는 그제야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
나는 이제 뭘 해야 하지 .
아직도 머리는 조금 멍한 편이었지만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게 되었다 . 나는 편한 자세로 냉장고에 등을 기댄 채 오늘의 할 일을 떠올렸다 .
근데 어젠 뭘 했더라 ?
뒤척이며 허리를 잠깐 세웠다 . 그런데 그때 옆구리 부근에서 시린 통증이 갑작스럽게 몰려왔다 . 잠시 후엔 온몸이 뜨겁고 또 화끈거렸다 . 눈앞이 흐려지더니 시뻘겋게 물들었다 . 그리고 거기에 쓰러져있는 한 사람이 보였다 .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 내게 벌어진 그 끔찍한 기억이 폭발하듯 깨어났다 . 나는 안방으로 뛰어들어가 미친 듯이 아내를 찾았다 . 나는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울부짖었다 . 하지만 그곳에 내 아내는 없었다 . 핏자국도 없었고 미친 살인마도 없었다 .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무것도 없었다 . 나는 입고 있던 셔츠를 찢어발기듯이 벗어 던졌다 . 황급히 둘러본 내 몸 어디에도 칼에 맞은 상처는커녕 생채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
갑자기 속이 메스꺼웠다 . 두개골을 드릴로 뚫는 것처럼 머리가 쑤셔왔다 .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생생한 기억 , 하지만 현실이라고 하기엔 그것은 생지옥이나 다름없었다 . 나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거실로 걸어 나와 소파에 쓰러지듯 앉았다 . 멍한 시선이 머문 곳엔 영국 국기가 그려져 있는 벽시계가 걸려 있었다 . 처음으로 간 유럽 여행의 길거리 좌판에서 산 중고시계였다 . 그 시계를 볼 때면 유럽을 자유롭게 누리던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 그런데 거기에 하나의 기억이 더 튀어나왔다 . 신혼집으로 이사를 하던 날과 부주의한 이삿짐센터 직원 그리고 산산조각으로 박살이 난 시계 잔해의 기억이었다 . 빗자루로 쓸어 담아 쓰레기통에 넣으면서 속상해했던 마음이 아직도 생생한데 , 어째서 지금 저 시계가 여기 걸려 있는 것일까 ?
속은 여전히 울렁거렸고 머리는 계속 아려왔다 . 다시 목이 말랐다 . 낡고 작은 냉장고에서 물 한 병을 꺼냈다 . 뚜껑을 돌려 물을 마시려는 순간 나는 흠칫했다 . 이제 구매한 지 1 년밖에 안 된 냉장고가 이렇게 낡았다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 그러고 보니 60 인치 TV 는 온데간데없고 그 반도 안 되는 구형 브라운관 TV 가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 나를 더욱더 당황하게 만든 것은 이 모든 게 낯설지가 않다는 것이었다 .
모든 것이 다 내가 총각 때 쓰던 것들이었다 . 어째서인지 한참 전에 버렸던 것들이 다시 다 이곳에 모였다 . 그리고 ‘ 이곳 ’ 마저도 원래의 우리 집이 아닌 총각 때 살던 옛날 집이었다는 걸 , 나는 곧 깨닫게 되었다 .
*
나는 진짜 과거로 돌아오게 된 것일까 . 정말 믿기 힘든 일이었지만 그것만이 지금의 현실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해답이었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이는데 꼬박 3 일의 시간이 걸렸다 .
우선은 기뻤다 . 지난밤의 끔찍했던 일들이 모두 없던 일이 되었음을 깨닫게 된 순간 난생처음으로 신께 감사드렸다 . 한편으론 무서웠다 . 아내와 함께한 달콤한 추억이 내 기억 속엔 이렇게 생생히 남아있는데 아내의 기억엔 나와 했던 모든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너무도 무서웠다 . 불행과 행복이 동시에 사라져버렸다 .
처음 아내를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 그날도 한가로이 소파에 누워 TV 를 보고 있을 때였다 . 택배가 아니라면 딱히 찾아올 만한 사람이 없는 우리 집 초인종이 오랜만에 울렸다 . 나는 귀찮은 몸을 일으켜 살짝 인상을 쓰며 문을 열었는데 교회쟁이라거나 방문판매 따위의 것이라면 한바탕 쏘아줄 참이었다 . 하지만 문 너머에 있던 건 교회쟁이도 방문판매도 아니었다 . 그저 처음 보는 젊은 여자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시루떡을 두 손 모아 곱게 들고 서 있을 뿐이었다 .
“ 안녕하세요 . 오늘 503 호로 새로 이사 왔어요 .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
꾸벅 고개 숙여 인사하곤 떡을 건네는 아내의 첫인상은 정말이지 사랑스러웠다 . 얼굴은 손바닥만큼이나 작았으면서 눈은 사슴같이 컸고 피부는 또 얼마나 하얀지 뽀얀 눈이라도 내려앉은 듯 밝게 빛났다 . 가만히 있어도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는 게 전형적인 웃는 상이었는데 바라보는 사람을 절로 미소 짓게 만드는 그런 얼굴이었다 . 첫눈에 반했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나는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 물론 수초 뒤 나타난 그녀의 남편 ( 당시엔 남편이었고 , 후엔 전남편이었으며 마지막엔 살인자였던 바로 그놈 !) 덕에 최단시간의 짝사랑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말이다 .
0/2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