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50줄
내가살던 고향은 워낙 촌 동네였다.
지금도 다른 동네에 비하면 그리 잘사는 동네는 아니다.
몇년전에야 시내버스가 하루에 4댄가 들어온다.
70년대초반
매미며 메뚜기 잡아 기름에 튀겨 간식거리로 입맛을 다셨고
개구리잡아 탕을 끓여 먹었는데 난 비위가 약해 뒷다리만 먹곤 했다.
우리집이 다른집에 비해 그나마 풍족했지만 항상 배가 고팠다.
논농사며 밭농사를 지어 먹거리는 아쉬운게 없었는데 그걸 팔아야 돈이되니
항상 쌀과 보리가 아슬아슬 했다.
5살땐가 동네에 전기가 들어왔다.
집집마다 얼마씩 걷어서 한전에다 주고 전기가 들어온 것이다.
30 여가구 남짓 되었다.
그리곤 서너달정도 있다가 티비를 샀다.
삼성 이코노흑백 텔레비젼.
다리가 네개씩이나 달리고 양 옆으로 미닫이문을 열어야 화면을 볼수있는 그런 티비..
심지어 열쇠도 있었다. ㅎㅎ
굴뚝에다 장대(대나무)매달아 안테나설치후 채널 돌릴때마다
안테나도 이리저리 돌려야했다.
꼭 2사람 이상이 있어야 한다.화면 보는사람과 안테나돌리는 사람...
국민학교 들어가기전부터 우리는 알바를 했다.
배고픈게 겨울인데 그놈의 밤은 왜그리 길었는지...
개구리잡아다 팔아도 봤고 새그물 놔서 참새도 잡았다.
철삿줄로 올가미 만들어 산속에 들어가 토끼도 잡는다.
새벽같이 올가미수거하러 껌껌한 산속에 들어가
올가미에 잡힌토끼가 모가지만 떨렁있고 몸뚱이가 없을때는 진짜 머리카락이 쭈삣 선다.
심지어 통트기 전이라 해도 산이 우거져 깜깜한 산속에서
저멀리서 빛나는 두 눈의 형체가 보일때에도 그리 무섭지는 안았다.
어른들 말씀이 늑대나 삯 짓이라고 하셧다.
어렸을때 제일 무서운게 있었는데 그것은 삯도 늑대도 여우도 아니었다.
한번도 보지못한 일본순사..
할머니께선 어리광을 부리거나 말을 안들으면 일본순사가 잡아간다고 겁박아닌겁박을 하셨다.
깜깜한 초야에서 빛나던 정체모를 두 눈빛보다 한번도 보지도 못하고 정체도 알수없던 순사란 말에
눈물을 뚝 그쳤던
그 단어.....순사
그렇게 유년기를 보내고 국민학교에 입학을 했다.
거리가 십리(4키로)였는데 책보를 어깨에 둘러매고 뛰다걷다를하다보면
한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그렇게 3년을 다니자 아버지께서 자전거를 사 오셨다.
이름하여 삼천리 자전거....
다리가 짧아 안장에는 안지도 못했지만 궁하면 통하는법..
한손엔 핸들을 다른손엔 안장을..
그리고는 삼각형 틀 안쪽으로 다리를 교차하여 발판을 비벼대면 속도가 제트기 저리가라다.
열살짜리 아이가 발판을 비벼대는 힘은 엄복동보다 힘찻고
속도또한 제트기보다 빨랐다.
한 시간 거리를20여분만에 돌파하다니.....
아~~~~
배가 아파온다.....
화장실 다녀와서 이어가보자..
경어체 뺀거 양해 부탁드립니다 첫 문구로 써주시면 더욱 좋으실것 같습니다
저는 얼마나 더 깡촌에서 자란걸까요
틀린거는 날때부터 전기가 들어와 있었다는거
쌀밥은 막내고모 첫번째 시집가는날 처음먹어봤습니다(제가 어려서 기억 못하는줄 아시는데 울 엄니 빡치게 하실때 고모부 한테 이야기 할까 합니다) 초가집 도 불내보고,
이제는 시골보다 도시생활이 너무 편하고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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