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제 인생이야기 한번 들어보실래요?" 라는 글을 보고 저역시 인생이야기를 해보고 싶어 글을 씁니다.
위로 3살터울의 누나가 있으며, 3살 무렵 아버지는 집을나가 엄마 혼자 저희 두남매를 키우셨습니다.
그 전부터도 아버지는 동네 여자들을 다 만나고 다닌다고 소문이 많았죠.
그렇게 어머님은 동내 모내기, 포도, 배 등등 과일따는일 등등 닥치는데로 일만하시다 도자기 공장에 취직을 하셨어요.
그곳에서 만난 어떤 삼촌이란 분이 저희집에 출입이 잦아지더니 결국 엄마랑 같이 사시더군요.
그때부터 저희에게는 지옥의 시작이였습니다.
"엄마한테 말하면 너희엄마랑 너희는 죽은목숨이다"라는 말을들으며 매일 어마어마한 폭력에 시달렸습니다. 누나와 저 모두...
어느날 그 삼촌의 부모님이 찾아오셨더군요.
어린나이였지만, 정확히 기억나는게 "애 낳고 살아라"였습니다. 어머님은 아이를 원하지 않았고 그 삼촌은 자신의 아이를 갖고싶어했어요.
그렇게 어머니와의 다툼이 많아지고 그때마다 타겟은 저희였죠.
시골 허물어지는 집에서 살다가 10살 무렵 인천의 17평 빌라를 사기당해 초기자본 300만원에 구입하고 어른들은 그때부터 빌라로 인한 빚을 값느라 더더욱 힘들었겠죠. 그 스트레스 해소처는 저와 누나 였지요...
헌데 누나보다는 저를 더 많이 때리더군요. 너 보면 너네 아빠라는 작자 생각난다고... 그나이 9~10살때 였습니다.
11살 무렵에는 학교갔다 와보니 안방 가운데에 옷들을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노란색 라이타기름을 뿌려놓고 불을 붙이고 있더군요.
"니 아빠엄마 옷들 썩은내 난다며 다 태워 없애야 한다고..."
키우던 강아지가 안보여 울면서 찾고다녔든데 화장실 변기 뒤에 흠뻑 젖은채 발발발 떨고 있더라고요.
입가에 핏자국이 있어 자세히 보니 송곶니 두개를 다 뽑아놓았더라고요.
나중에 엄마한테 들은 얘기로는 간식을 주려했는데 자기손을 물어서 그랬답니다.
그냥반이 술마시고 들어오면 저희는 몰래 집을나와 동내 공원에서 그새끼 잠들때까지 배회하다 조용히 들어가곤 했죠.
그렇게 지내다 어머니께 말씀을 드렸더니, 어느정도 눈치를 채신것 같았고 그때부터는 엄마도 함께 도망다녔죠. ㅎㅎㅎ
동내 모텔 사장님께 빌어서 잠을 자고 다른객실 청소를 대신해주고 나온적도 있었네요.
제 나이 15살때 정말 가족다 죽은목숨이다 생각하고 그집 부모들을 불러 끝장을 보자 하고 정리를 했습니다.
그 빌라에서 도망나오듯 쫒겨나와 건물과 건물 사이에서 3식구가 잠을 자기도 하고 동내분의 도움으로 전기장판을 득했는데 전기를 꽂을대가 없어 순대국집 사장님에 전기를 연결해 밖에서 잔적도 있었네요. 그렇게 살았어도 그사람이 없다보니 불편함은 괜찮은 옵션이였습니다.
그렇게 지내다 동내사람의 도움으로 작은 방하나 딸린 조그만 칼국수집을 정말 작은돈으로 시작할수 있었습니다.
화장실이 없어 11~12시까지 기다려 상가들 문을 닫으면 공용 화장실에 가서 누나와 저를 번갈아가며 씻겨주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어느날 어떻게 알았는지 아빠라는 사람이 저희 가게 앞에 와있더라고요.
엄마랑 이런저런얘기를 짧게 하더니 그냥 갔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무렵 중학교 3학년시절 새벽 불길한 전화가 왔고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소식이였습니다.
나중에 안 얘기지만, 그때 아버지는 아픈몸으로 다시 집으로 오고싶어 했고 엄마는 거절한 상태였더라고요.
그렇게 생판 얼굴도 잘 모르는 아버지를 보내는 3일이 너무나도 힘들었네요.
얼굴도 모르는데 뭐가 힘들었냐구요? 작은아버지라는 작자가 저는 장남이고 장손이니 3일간 잠을 자면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ㅎㅎㅎ
그렇게 마지막까지도 힘든 추억만 만들어 주시고 가셨네요. 저희 아버지는...
아버니 마지막 유품은 쉐인 이라는 브렌드의 집업스타일의 잠바였습니다.
마지막 지갑에 있던 돈으로 사서 제게 준거라더군요.
그때 이후 중2병(?) 방황을 많이 했어요.
세상이 저한테만 거칠고 세상 불행이라는 불행은 다 저희가족몫인듯...
놀고싶어도 돈이 없으면 놀수가 없더군요. 친구들한테 신세만 지고...
친구와 집을나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학교도 안가고 DJ.doc 노래를 들으며 인생을 즐기다 보니, 어느덧 검사앞에서 변명을 하고 있던 제가 있더군요.
아마도 그때부터 정신을 차리고 이 불쌍한 우리 어머니품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꼴통학교였지만, 공부도, 운동도, 피시방 알바도 정말 열심히 했어요.
워낙 저같은 놈들만 모아놓은 학교다보니, 몇일 밤새 공부해보니 전교 7등을 하고있더라고요.
그러게 반장도 해보고 전문대에도 입학할 수 있었어요.
그무렵 학교다니면서 아르바이트란 아르바이트는 다 해본것 같네요.
새벽 우유배달, 중국집배달, 주유소, 피시방, 닭굽는식당, 카센터에서 미션을 등으로 받아서 내려도 보고...
돈에대한 갈망이 어마어마했을 무렵, 고등학교 동창의 권유로 인덕원의 다단계 들어가게 되었고 그동안 어머니에게 드렸던 돈을 다시 어머니께 거짓으로 타내서 모두 잃었죠. 그 이상을 잃었었죠....
정말 많이 울었어요 정말정말 많이도 울었어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전역과 졸업 후 제가 갖고있는 실력과, 스팩(스팩이랄것도없지만,,,)으로는 말도안되는 대기업 위주로만 입사지원서를 넣었어요.
친구들 지인들 모두 다 비웃었죠.
잡 코리아, 알바천국 등이 아닌 현대계열사 모두, LG계열사 모두, 삼성 계열사 모두 등등 회사 홈페이지에 있는 모집 공고란을 참고해서 2년 가까이 이력서만 300통 정도는 넣은것 같아요. 학사 박사 이상 모집에도 그냥 넣었습니다.
물론 자격미달이지만, 그냥 넣었어요. 헌데 진짜 신기하게도 1차 서류에 합격했다는 문자들이 간혹 오더라고요.
그래서 용기를 갖고 더 넣었어요. 한 면접에서는 궁금해서 불렀다는 얘기를 대놓고 듣기도 했습니다.
결국에는 계약직이지만, 합격했고 대 경사가 일어났어요. 그렇게 비웃던 친구들도 어이없어했죠 ㅎㅎㅎㅎ
헌데 취업후 제 한계가 있구나를 느끼게 되었고 결국 임원급이 되지 못하는이상 답이 없어보였습니다.
어떻게든 정규직이 되보고 싶었는데, 팀에서는 정말 재밌고 의미있게 일했었는데, 윈도우 비스타가 출시될 무렵 퇴사를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황금같던 기회라고 여겼던 회사생활을 정리하고 작은 포장마차를 오픈하려 준비했어요.
일하는 중이라 시간이 없네요...
결론을 말씀드리면, 어둠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고통이라는 것의 크기 차이는 있겠지만, 느끼기 나름이라고 생각해요.
험하고 힘든일들을 극복하고나면, 그때 느낄수 있는 만족감과 자존감은 이루 말할수 없어요.
딱 10년, 10년만 "나라는사람은 없다"오로지 일만하는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고 살면, 원하는 부분을 꼭 얻을수 있을거라 장담합니다.
의심하지말고, 10년만 주위사람 경조사마저도 끊고 앞만보고 달려보세요. 끝이 없는 터널은 없습니다.
참고로 지금 저희는 제주에서 펜션과 건축업을 하고 있습니다.
직장 필요하시면 오십시요.
면접보고 저희와 같이 일할수 있는 분이라면 어머님과 함께 생활할수 있는 집도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쪽지 주시면 비행기표 끊어드리겠습니다.
부담 느끼지 마세요. 저희도 도움을 받고 살았습니다.
도움을 받을줄 알아야 남도 도울수 있습니다.
입사조건은 거짓없이 정신상태만 올바르면 됩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전 저만 고생하며 살았는줄 알았는데 저보다 고생 열배 백배 하신분들이 더 많으시군요..
고생 많으셨어요. 전 저만 고생하며 살았는줄 알았는데 저보다 고생 열배 백배 하신분들이 더 많으시군요..
대단 하시네요
건강하시구요~
더 이상 말이 필요없네요. 굿!!!
인생 거저는 없는것 같아요
힘듦을 겪고 이겨내면 이전보다 더 단단해지고 멋있어진 내 모습을 마주하게 되니까요ㅎ
훌륭하세요,앞으론 늘 꽃길만 걸으실겁니다.
돈에대한 갈망이 어마어마하다라는
문장이 마음속에 너무 와닿습니다...
ㅎㅎ지금 인테리어업을 하는 현재의 모습도...
선한영향력 너무 보기좋으시네요~
앞서 글 쓰신 분도... 언제고 이런 글을 적는 날이 오길 기원합니다.
애쓰셨습니다.
제가 다 감사한마음이드네요
언젠가 저도 이런글을 쓰며 누군가에게 도움되는 사람이 되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 합니다
앞으로 더 건승하고 건강하고 행복한 인생 사시길
사이비종교 인간들
다 뒤져야 나라가 삽니다
멋진 마인드 배우고 갑니다!
매번 남탓하는 인간들만 드글드글한데..
1. 끝이 없는 터널은 없다..
2. 10년만 난 없다라는 마인드로 일해라..
이 두마디는 피가되고 살이되는 명언입니다.
멋지십니다.
쪽지주시면 제주에 갔을때
들러도될런지요?^^;;
행복한연휴되세요♡!
감사히 잘들었습니다.
앞으로 더 멋진 인생이야기 기대하며 응원하겠습니다 ~
이제라도 자리 잡은 님께 간절히 바랍니다.
열심히 산 당신은 인생을 논할 자격이 있습니다. 꼭 꽃길만 걷기를 바라겠습니다.
잘 새기고 항상 응원하며 저 또한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칠수 있는 사람이 되길 다짐하며 추천 누르고 갑니다^^
저도 스펙이 고졸이지만 입사원서는 대기업만 넣었어요
중소기업오래 다니다가 힘들고 대우가 너무 안좋아서 중소 다니면서 심심하면 대기업원서 넣다보니
어느날 h사 계열사에서 서류통과 되었다고
면접 보러 오라해서 뭥미? 하고,정장 사입고 갔더니
어떻게지원하게 됐냐고 물어볼때 부족한 학력이지만 제가 현재 할수 있는걸 다 시도해 본거입니다 라고 했더니 출근하라해서 ..
그래서 다니고 있습니다
언제든 희망과 기회는 스스로 품고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하게된 동기입니다
대단하심
이말을 하는이유는 변해야겠다 하신분들 잊지마시고 끝까지 이생각만 하시길바랍니다...
앞으로도 쭉 번창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고난과 역경을 주시는 이유는,
그러한 고난과 역경을 이길 충분한 능력을 주신 까닭입니다.
게시글 쓰신 분처럼,
고난과 역경을 이기고 당당하게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그냥 능력있고 당당하게 살아가게 해주제~~
머들라고 댁의 느님은
고난을 줘가꼬
넘의 아들을 지아들 맹글라고 해싸쏘?
늘 행복하세요~!
앞으로 좋은 일들만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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