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어렸을때 배운 심리학적 분석에 기반한다.
원래 멧퇘지새끼같이 기망과 사기로 사람을 속이며 승승장구한 버러지같은 인종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기가 인간의 축에 끼지 못한다라는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교육을 받을때 도덕, 윤리, 양심의 존재와 스스로의 규율에 대한 기본적으로 인간은 선함을 추구해야한다고 배우기 때문이다.
그런데 본성상 그 배운것을 이행할 수가 없으니 이상과 현실의 상충점에서 자격지심이 생기게 된다. 아무래도 그런 자격지심을 가지면 도저히 세상을 살아갈 맛도 안나고 지속적으로 부담이 된다.
그래서 멧퇘지새끼는 남들도 자기와 같은 버러지 종자로 퉁쳐서 그 일말의 양심을 털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멧퇘지의 검사생활은 그런 양심을 털어내는 시도에 도움이 되었다.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이 없다. 즉 세상은 다 버러지같은 새끼들로 이루어져있다고 멧퇘지새끼는 확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의 주변에 한줌도 안되는 인맥들 뿐인것이다. 하지만 근묵자흑이라 했다. 버러지 새끼옆에는 역시나 버러지가 꼬이는 법이다. 그러니 더 사람이라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혐오하게 된다.
그런 마인드이기 때문에 남의 고통과 비극을 공감할 수 없다. 이 맷퇘지새끼의 대가리에서는 슬픔의 눈물도 사기이고, 고통의 졀규도 이익을 얻기위한 악다구니기 때문이다.
당연히 평생을 기망과 사기로 살아온 멧퇘지새끼가 다른 사람 또한 모두 기망과 사기라고 믿기 때문에 자신에게 하등의 손해가 미치지 않는더라도 동의 할 수 없다. 이것이 메퇘지새끼가 왜 이태원특별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는가에 대한 설명이다.
원래 인간이란
자기한테 손해가 되고 불이익이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누군가 극한의 상태에 빠졌다면 손을 내밀고 도와주는 것이 본성이다.
천안함침몰때 북한의 어뢰공격이 아니라 좌초라고 믿는 사람들도 군대보낸 자식을 잃은 부모의 절규를 보고 전쟁 중 사망자로 국립묘지에 뭍히고 유공자로 영웅이라고 불려도 거기에 반대를 하지 않았다.
내가 계속 사실이라고 믿는 것을 주장하는 것보다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여야하는 남들의 고통이 더욱 큰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결론은..
사람 거죽을 썼으면 최소한 사람답게 굴자. 이 멧퇘지새끼야.
욕 쳐먹고 들어가냐~
0/2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