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원 갈일 있어서 가는김에 아이들에게도 좋은 교육 기회가 될것같고 저 역시 꼭 찾아뵙고자 하는 마음이 커
휴일 포기하고 찾아뵙고 왔습니다
근데 문제는 너무 넓어...인터넷에 찾아봐도 자세히 알려주는 곳이 없기도 하고..
홍범도장군님은 독립유공자 제3묘역에 잠들어 계십니다. 정자가 있는 주차장에 정자 바로옆에 계시더군요
이미 봉안식이 끝나고도 열흘가까이 지난후라 조용하겠지 했는데 참 많으신 분들이 오셨었고 계속 또 방문중이였습니다. 다만 비가 많이 왔어서 조화나 안내문구등은 일부 철수한걸로 보입니다.
장군님께 인사 드려습니다.
다들 엄숙하신데 뛰고 장난치려해서 한번 혼나고 각잡은 모습입니다ㅋㅋ
유투브에서 오시는 모습을 보다가 직접 뵈니 더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평안히 영면하시길..감사합니다
끝으로 장군님 이웃사촌을 소개합니다. 저희 외할아버지도 현충원에 계셔서..
현충원 방문 주 목적이였습니다. 어머니가 꿈에 할아버지가 다녀가셨는데 장화를 신고 걸어가시더래서..근데 마침 비가 오네요 신기하게 인사드릴때 맞춰 비가 그치고..저희 온다고 비를 멈춰주신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외할아버지는 6.25참전 용사셨습니다. 살아계실때 가까이 찾아뵙고 많은 이야기를 못나눈게 지금와서 후회스럽습니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모든분들께 감사드리며 저도 저희 아이들에게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희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담에 찾아뵈러갈 때 홍범도장군님도 찾아뵈려합니다.
미리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희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http://www.securityfact.co.kr/news/view.php?no=2044
...... 자유시에 집결한 대한독립군은 민족주의·공산주의·무정부주의 등 다양한 성향의 조직이 혼재된 상태였다. 이들 사이에서는 적군 산하로 편입돼야 한다는 세력과 이를 거부하는 세력 등으로 분열돼 반목현상이 심화됐다.
이중 청산리대첩에 참전했던 사할린 출신 부대에서 소련군 편입을 거부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소련군은 기관총과 대포, 장갑차 등을 앞세워 이들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
이 과정에서 홍범도는 사할린 부대 편에 섰다가 이르쿠츠크파 자유대대 편으로 돌아서서 사할린 부대를 공격하는 데 가담했다. 이르쿠츠크파 배후에는 소련 정부가 있었다.
자유시 참변 이후 항일 무장독립군은 시베리아와 만주 벌판 곳곳에서 사살·체포당하거나 강제노동에 끌려갔고, 이로써 한국 무장독립운동은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다. 1920년 이후 봉오동·청산리대첩과 같은 항일 무장독립운동 역사를 찾아보기 힘든 이유 중 하나다.
홍범도는 그 뒤 소련의 레닌으로부터 금화 100루블과 레닌의 이름이 새겨진 권총 등을 선물로 받은 사실도 확인됐다.
자유시 참변 이듬해인 1922년 2월 모스크바에서 코민테른의 주최로 열린 극동민족대회에 홍범도는 한인 대표로 참석했고, 여기서 레닌과 단독면담도 가졌다. 학계에서는 "레닌의 선물은 사실상 소련에 협조해준 감사의 표시나 다름없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1921년 자유시 참변 이후 홍범도는 휘하 병력 300명을 소련군에 편입시켰고, 그 자신은 소련군 제5군단 합동민족여단 대위로 편입된 뒤 25군단 조선인여단 독립대대 지휘관으로 승진했다. 군복은 1923년에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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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는 단순히 소련에 협력했던 것만이 아니라
동지를 배신하고 죽음으로 몰아갔던 반역자임.
그래서 죽을때까지 독립운동에 끼지도 못하고 먼 나라에 가서 짱박혀 살았던 것.
어찌 이런 자를 현충원에... ㅉㅉ
최소한 자유시 참변 공부좀 하시고 욕을 박으세요.
독립군 연구의 대가인 반병률 한국외대 사학과 교수는 19일 연합뉴스에 "당시 국제정세상 독립군이 항일무장투쟁을 이어가려면 소비에트 러시아의 지원이 필요했고 그래서 많은 독립군이 자유시에 모였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복잡하게 얽힌 당시의 정황을 자세히 살펴보지 않은 왜곡된 주장(이념 대립)으로 국민을 오도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https://www.yna.co.kr/view/AKR20210819098400502
봉오동전투와 청산리대첩 이후 일제의 독립군 탄압이 거세지자 연해주와 아무르주 지역에서 활동하던 상당수 독립군 부대가 1921년 1∼3월 자유시에 모여 독립군 통합을 논의했다.
일제와 적대관계인 소비에트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항일무장투쟁을 지속하겠다는 의도였다.
Godking1 님 감사합니다.
부끄러운 기록이 아니라 러시아 및 중국의 사서에서 확인된 내용만으로도 이글이 거짓이다는게 판명된것이고
니가 말하는 이논리가 어디서 나왔냐??
친일 어용단체에서 출발한 낙성대 연구소에서 나온글이야 반일종족주의라는 글을 싸지른 이영훈이라는 매국노알지?? 그놈이 연구비받고 장학금받고하던 친일 매국노 육성단체란다
거기서 쪽바리 새끼들 간담을 서늘케한 홍범도 장군님의 귀환이 얼마나 무서운지 말도 안되고 역사적 사료와 전혀 다른 사실로 역사왜곡을 시도하는거거든
생각이 없고 그냥 짱깨만도 못한 버러지인줄은 알았지만
입으로 똥싸는 일은 하지말자
담에 찾아뵈러갈 때 홍범도장군님도 찾아뵈려합니다.
미리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체 왜 문정부 이런자를 영웅대접 하는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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